[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윤석열 정부 시기 정권 실세들의 비호 아래 무풍지대에 놓여 있던 농협금융지주가 부메랑을 맞고 있다. 경찰 반부패수사대가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측근들을 차례대로 조사하면서 중앙회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정부 지지율이 60%에 육박한 가운데 서슬퍼런 칼날이 다시 농협을 향하는 형국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농협은 비교적 안전지대에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 뒷배경으로는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의 존재가 지목된다. 이성희 전 농협중앙회장은 박근혜 국정농단에 연루됐던 최상목 전 부총리가 관련 혐의를 벗어내자 지난 2020년 3월 그를 농협대 총장으로 영입하며 금융권 네트워크를 키웠다. 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인사였고 결과적으로 농협은 윤석열 정부 당시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 농림부 등의 직접적 제재나 인사 압박을 피해 호시절을 누렸다는 평가다.
최상목 전 부총리는 농협과 인연을 맺기 전까지 전형적인 재무관료 라인의 엘리트였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경제금융비서관을 역임했고 기획재정부 1차관까지 올랐다. 당시 금융정책 전반을 조율하며 관료사회에서 실세 차관으로 불렸지만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관련자 꼬리표를 달며 커리어에 급제동이 걸렸다.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곳이 농협이었다. 이성희 전 회장은 통상 퇴임 직전의 부행장급이 향하던 인사지인 농협대학교에 지난 2020년 총장직으로 내정을 했다. 당시 내부 반대의견이 거셌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전격적으로 영입했던 것이다. 이성희 당시 중앙회장은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낸 그에게 대우도 파격적이었다. 연봉 3억원대에 별도 업무추진비가 지급됐는데 이는 2021년 기준 전국 사립전문대 총장 평균 연봉(약 1억6000만원)의 두 배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부반발이 컸던 그 인사조치는 2022년 초 제20대 대통령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농협의 든든한 뒷배로 반전했다.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최상목 당시 총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로 전격 합류했고, 이후 같은 해 5월에는 용산 집무실이 꾸려지자 곧바로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것이다.
최상목 당시 총장은 나아가 2023년 12월에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런 연유로 농협이나 이성희 전 회장이 선택한 이른바 전 정권 인사에 대한 투자 전략은 그 목적에 적중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호시절을 누리던 농협은 이후 평택 출신의 이성희 전 회장이 물러난 뒤에 다시 회장을 선출했는데, 여기서 경상남도 합천 출신으로 율곡농협에서 5선 연임을 기록한 강호동 회장이 조합들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강 회장의 당선은 보수 정부의 컬러를 대변한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당시 강호동 신임 회장은 최상목 전 총리와 농협 사이의 인연을 발판삼아 정부와 접점을 늘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 수차례 초대됐고, 몇몇 저녁 자리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큰 격려와 지원 의사를 전달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농협이 이런 식으로 경제 관료의 경력을 이어주고, 정권 교체 후 전직 인사가 다시 공직에 복귀하면 든든한 뒷배가 되어 보은을 해주는 식의 상부상조는 고전적인 전략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런 사례는 최상목 전 부총리에 국한하지 않는다. 임종룡 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나. 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등 전직 고위 관료들이 농협금융이나 산하 연구기관을 거쳐 정부로 복귀한 사례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5년 2월 취임한 이찬우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사실상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추천해 임명한 전직 관료다. 이찬우 회장은 기획재정부 차관보와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역임했고, 박근혜 정부의 실세 중 실세로 불렸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절친으로 유명하다. 강호동 회장은 이찬우 회장을 임명하기 전에 다른 여러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를 신중히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농협식의 관계 설정을 앞으로 다시 이어지지 않아야 할 구태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기획재정부나 경제 관료 출신, 이른바 모피아 공무원 올드보이들이 농협이나 공공기관 계열사 등으로 이른바 피난을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 철학은 관료 낙하산을 지양하고 관련 기관의 전문성 있는 내부출신 임원의 대표 선출이나 임명을 주로 하는 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현 강호동 회장을 비롯한 농협 리더십들에 대한 압박은 거세어지는 분위기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호동 회장 집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해 2024년 1월 중앙회장 선거와 금품수수·부당대출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다. 강호동 회장은 이른바 농민대통령으로 불리며 취임 첫해부터 셀프 연임을 가능케 하는 법 개정까지 추진하는 등 상당한 영향력을 농협그룹 내에서 발휘해 왔다. 그러나 강 회장은 이 사태로 연임은 물론이고 임기 완주도 쉽지 않을 거라는 지적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측근들이 경찰조사 대열에 합류하면서 위기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협중앙회는 강호동 회장의 중도 사임 가능성이 거론되자 내부의 계약·구매 관행 전반을 손보는 고강도 대책을 마련했다. 모든 수의계약을 제한하고, 계열사 간 물품 구매는 전면 금지해 경쟁입찰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이를 위반하면 중징계를 적용해 계약 투명성과 사고 예방을 강화할 방침이다. 강호동 회장은 쇄신책을 내놓으면서 자신이 계열사 인사 등에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중앙회와 강호동 회장은 다시 계열사 인선 등에 관여하면서 세력을 결집하려는 분위기라는 것이 내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농협 관계자는 "강 회장이 경찰 사정 라인에 연속 포착되면서 위기를 맞았고, 그 직후 쇄신을 약속했지만 다시 구설수가 흘러나오고 있다"며 "최근 NH투자증권 사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에 강호동 회장 측근이 추천 자격을 예외적으로 얻어 유력한 후보로 나선 것도 이런 상황을 직접적으로 증명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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