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최령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의약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적용기준은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원료의약품(DS, API), 완제의약품(DP), 위탁개발생산(CDMO) 등에 차등 적용할지 모든 의약품에 일괄 적용할지가 관건인데 국내 제약·바이오사 및 CDMO 기업들이 받을 영향도 상이할 전망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수입한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추가로 10%의 관세를 적용하는 등 '관세 전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중 철강·알루미늄뿐만 아니라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분야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의약품 관세 부과 기준이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DS, DP, CDMO 등 적용 범위에 따라 기업들의 대응전략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DP에만 관세가 부과될 경우 국내기업들은 생산지를 조정해 관세를 회피할 가능성이 있지만 DS까지 포함될 경우 원료를 매입하는 CDMO 기업과 원료의약품 제조업체는 가격 경쟁력 저하로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에는 중국 압박용으로 필수의약품에만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거듭된 발언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DP에만 관세가 부과될 경우 영향은 미미하지만 DS, API까지 포함된다면 기업별 영향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부분 DS 형태로 글로벌 고객사에 수출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엑스코프리)'를 한국에서 API를 생산한 후 캐나다에서 벌크 태블릿 및 패키징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필요 시 미국 CMO로 즉시 전환할 수 있는 대응력이 있다.
녹십자는 면역글로불린 혈액제제 '알리글로'를 미국 등지에서 혈장을 수입해 국내에서 DP로 가공한 후 미국법인에 판매하는 구조다. 알리글로가 미국 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된 만큼 관세 대상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셀트리온 역시 미국의 의약품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비해 현지 위탁생산(CMO) 업체를 통해 완제의약품(DP)을 생산하고 있으며 협의를 통해 추가 생산가능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국내 중소 위탁생산(CMO)의 경우 고객사 이탈과 가격 경쟁력 약화 등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내 CMO에서 생산한 의약품의 수출 가격이 급등하면 미국 고객사(제약사)들이 관세 부담이 적은 다른 국가의 CDMO로 발주처를 변경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국내 중소 CMO는 에스티팜, 바이넥스 등이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결국 자국 내 생산"이라며 "원료의약품 시장에서 중국과 인도의 점유율이 높은 만큼 이번 조치가 글로벌 공급망에 미칠 파급력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내 점유율이 높은 CDMO 기업들은 당장 큰 변화를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중소 CMO들은 고객사의 생산 거점 이동으로 계약 축소 등의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외교·통상 접근을 통한 중장기적인 대응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CMO 관계자도 "현재 의약품 관세 부과 기준이 명확하지 않지만 API까지 포함될 경우 국내 CDMO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 고객사들이 관세 부담을 이유로 발주처를 변경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한 "DP만 관세 대상이 된다면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DP 비용 증가가 원료 구매 전략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장기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고객사들과 협의를 통해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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