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박종인 논설위원] 지난주말 농협금융지주를 끝으로 올 연말 5대 시중 은행장 인사가 모두 끝났는데요.
총평을 한다면 한마디로 파격입니다. 파격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세 가지인데요. 첫째 연령파괴, 둘째 TK(대구·경북) 급부상, 그리고 마지막은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역행입니다. 이 때문에 올해 은행장 인사에 모종의 힘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지만 아직은 '확인 불가'입니다.
◆ 은행장 인사에 나타난 3가지 파격
5대 시중은행 가운데 4곳의 은행장이 교체됐지요. 국민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신한을 제외한 4개 금융지주가 핵심 계열사인 은행의 최고경영자(CEO) 은행장을 바꿨습니다.
KB국민은행장에는 KB라이프생명 이환주 대표가, 하나은행장에는 하나카드 이호성 대표이사, 농협은행장에는 강태영 농협캐피탈 부사장, 그리고 우리은행장에는 정진완 부행장(중소기업그룹)이 각각 발탁됐습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유일하게 연임됐지요.
은행장 임기는 못해도 2~3년은 보장됐는데요. 이번처럼 1년으로, 그것도 한꺼번에 왕창 물러나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모든 은행원의 로망인 은행장이란 자리가 솜털처럼 가벼워진 느낌인데요. 재벌 총수를 오라 가라하던 그 파워는 다 어디로 간 걸까요?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될 때 예견된 일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올해 5대 은행장 인사 내용을 간단히 훑어볼까요. 가장 먼저 인사가 난 곳은 국민은행으로 11월27일 차기 은행장이 발표됐습니다. 이어 29일 우리은행장, 이달 5일 신한은행장, 12일 하나은행장, 20일 농협은행장에 이르기까지 약 한 달간 진행됐는데요.
◆ 정진완 우리은행장의 '나이-경력 파괴'
5대 은행 가운데 우리금융이 가장 파격적입니다. 먼저 신임 정진완 은행장은 1968년생, 56세로 다른 은행장에 비해 가장 젊습니다.
이환주 차기 국민은행장과 이호성 차기 하나은행장, 그리고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한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모두 1964년생으로 60세 동갑내기고 강태영 차기 농협은행장은 1966년생으로 58세인데요.
이렇게 보면 정진완 행장이 무척 이른 나이에 은행장에 발탁된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부행장이 된 지 1년이 채 안 돼 은행장이 된 것도 파격입니다. 우리금융에서는 그동안 통상 2년 이상 부행장 경험을 쌓아야 은행장 도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특이점은 정진완 행장의 이력인데요. 우리은행이 공개한 그는 프로필을 보면 1995년 한일은행 입행 후 경력이 대부분 지점, 특히 중소기업 영업에 특화돼 있고 현재 보직도 중소기업그룹 부행장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은행의 강점이 '대기업 영업'이란 걸 감안하면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입니다. 또 하나는 본점 경험, 특히 예산이나 전략 등 기획부서 경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은행장을 볼까요. 먼저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비서실장과 경영기획그룹장, 자금시장그룹장 등 전략(CSO)과 재무(CFO) 총괄을 거친 전략 및 재무 전문가입니다.
강태영 차기 농협은행장은 인사부와 종합기획부, 디지털금융(DT) 부행장 겸 지주 부사장 등을 거쳤습니다.
이환주 차기 국민은행장은 영업기획부장, 외환사업본부장. 지주 재무총괄 부사장(CFO) 등의 본점 및 지주 경력이 있습니다.
다만 이호성 차기 하나은행장의 경우 영남영업그룹장과 중앙영업그룹장 등 일선 영업통으로 꼽히는데요. 이런 점에서 정진완 차기 우리은행장과 경력에서 유사합니다.
◆ 5명 가운데 3명이 대구 출신
여기서 흥미로운 건 본점 경력이 없는 이호성 차기 하나은행장과 정진완 차기 우리은행장 모두 대구 출신이란 것입니다. 이호성 차기 하나은행장은 대구 중앙상고를, 정진완 차기 우리은행장은 포항제철고와 경북대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차기 은행장이 모두 대구 출신에 본점 근무 경험이 전무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건데요. 연임에 성공한 정상혁 신한은행장 역시 대구 출신(대구 덕원고, 서울대 졸업)이란 점도 우연치고는 타이밍이 절묘합니다.
결국 올해 시중은행장 인사 결과 5대 은행 가운데 3곳의 은행장이 대구 출신인 건데요.
참고로 이환주 국민은행장은 서울출생으로 선린상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했고, 강태영 차기 농협은행장은 진주 대아고와 건국대를 졸업했습니다.
◆ '내부통제와 위험관리'에 역행하는 우리은행
무엇보다도 최근 금융권에선 우리은행을 비롯한 각 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빈발하고 있어 내부통제와 위험관리가 무엇보다 강조되고 있는데요.
또 금융당국은 내년 2월부터 각 은행에 책무구조도 도입을 의무화해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강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은행의 과도한 실적주의를 경계하며 내부통제와 위험관리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내부통제가 취약한 우리은행이 차기 은행장으로 '영업통'을 발탁한 건 무슨 이유일까요?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은행 등이 은행 안팎의 예상을 깨고 일선 영업통을 은행장으로 발탁한 건 예외"라면서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은행장이 오면 아무래도 내부통제나 위험관리 기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은행장이 영업을 강조하면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부서 목소리가 작아지고, 반대로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부서에 힘을 실어주면 영업력이 약화되는 건 은행의 상식이라는 겁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금융당국의 내부통제 강화 움직임에 역행하여 '영업통'을 전격 발탁하는 인사를 용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금융지주 회장 등의 약한 고리가 이번 은행장 인사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요?
◆ 임종룡 회장과 함영주 회장, 그리고 이복현 원장
흥미로운 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20일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에 대한 발언입니다. 이복현 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주택건설회관에서 '건설업계 및 부동산 전문가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남은 임기 6개월 동안 검사·감독 방향은 여전히 엄정·무관용의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강한 기조로 검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우리금융지주에 대한 검사 결과 발표를 내년으로 미룬 건 경미하게 취급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의미였다면 '약한 맛'으로 이달에 발표했을 것이다. 원칙대로 '매운 맛'으로 시장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1월에 발표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엄정대응의 원칙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함영주 회장의 연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함영주 회장의 연임 도전 여부가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만큼 셀프 연임을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함영주 회장의 심성 등으로 비춰보면 개정된 규정을 적용받지 않겠다고 하실 분이다."
또 임종룡 회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언급했다고 합니다. "우리금융이 과거 내포하고 있던 파벌주의와 여신관리의 난맥상이 현 회장 체제에서 고쳐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그룹 전체의 문제다."
이날 이복현 원장의 발언은 무척 강했는데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실패와 국회 탄핵과 관련 이런 말도 했습니다.
"최근 발생한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기회로 삼아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복현 원장의 이 경고는 누구를 향한 것일까요?
어쨌든 올 연말 5대 은행장 인사의 특징은 ▲이른 나이에 발탁된 1명의 은행장 ▲본점 경험이 전무한 영업통 은행장 2명 ▲은행장 5명 중 3명이 TK출신 등으로 요약됩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혹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조금 더 빨랐다면 은행장 인사 내용이 달라졌을까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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