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룹의 핵심 부동산 자산이자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하는 한편 자산재평가·자산유동화·사업구조조정·비핵심 계열사 매각 등 다양한 자구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이 같은 노력에도 시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유통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의 부진 탓이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설의 진앙으로 꼽힌다. 이에 딜사이트는 롯데그룹 계열사의 유동성을 비롯한 재무 현황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송한석 기자] 롯데케미칼이 내년에 인도네시아 라인프로젝트의 캐파(CAPA, 생산능력) 확충 등 대규모 증설이 완료되긴 하지만 해당 제품들 또한 중국과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는 범용화학 제품이다 보니 수익성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첨단소재의 판매가 늘어야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케미칼도 첨단소재 부문을 이끈 이영준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내년 상반기 인도네시아에 진행 중인 라인프로젝트를 끝마칠 계획이다. 총 5조원 가량이 투입된 해당 프로젝트는 에틸렌 100만톤, 프로필렌 52만톤, 부타디엔 14만톤 등 케파(생산능력)를 늘려준다. 이로써 롯데케미칼의 에틸렌 총 생산능력은 올해 354만톤에서 내년 454만톤으로 28% 증가한다.
특히 해당 프로젝트는 롯데케미칼이 직면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롯데케미칼은 특약 조건인 'EBITDA/이자비용 5배 이상'을 달성하지 못해 2조450억원에 달하는 회사채에서 EOD(기한이익상실)이 발생했다. 롯데케미칼의 올해 9월말 기준 EBITDA/이자비용은 0.9배에 불과하다.

해당 회사채는 롯데타워가 담보로 맡겨진 이상 사채권자들이 특약 조건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목할 만한 대목은 재무 약정이 걸린 차입금이 이 회사채 말고도 더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외화은행차입금 2255억원 ▲장기차입금 9500억원 ▲종속기업 지급보증 2조4607억원 등 총 3조6362억원 등이다. 모두 'EBITDA/이자비용 5배 이상 유지'가 공통으로 설정돼 있다. 현재는 재무약정 준수의무가 면제돼 있거나 내년까지 웨이버를 받은 상황이다. 즉 다시 EOD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내년까지 이자비용을 감당할 만한 실적 반등이 필요한 셈이다.
문제는 내년 라인프로젝트 등으로 생산성이 향상됨에도 범용제품 위주인 만큼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범용제품 비중이 높은 지금의 포트폴리오로도 중국과의 가격경쟁력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보니 캐파가 늘어나더라도 반등은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롯데케미칼은 올해 3분기까지 15조5343억원의 매출을 내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6% 늘었지만, 영업손실 4136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됐다.
유준위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EBITDA/이자비용 지표의 5배 이상 유지 의무 위반은 즉시 치유가 힘든 상황"이라며 "인도네시아 증설 프로젝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지분 인수 등으로 차입금이 확대돼 이자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EBITDA/이자비용이 5배를 지속 하회할 가능성이 높아 특약 조건에 '3개년 누적 평균 EBITDA/이자비용 5배 이상 유지' 조항이 포함되는 한 중단기 내 EOD 사유가 분기마다 반복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롯데케미칼도 첨단소재 사업을 총괄해 온 이영준 부사장을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현재 범용화학 제품 비중이 높은 포트폴리오에서는 수익을 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대표이사와 2개 핵심 사업(기초 소재와 첨단 소재)을 각각 총괄하는 2인으로 구성돼 온 3인 대표 체제에서 이영준 첨단소재대표가 기초소재대표도 겸하면서 2인 체제로 바뀌게 됐다.
롯데케미칼은 화학 사업을 고부가 스페셜티 중심 포트폴리오로 전환할 계획이다. 현재 내부거래까지 포함된 롯데케미칼 전체 매출은 16조6473억원이다. 이 중 기초화학이 63.6%인 10조5947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도 중국의 범용화학 제품 증설로 공급 과잉 변수가 생긴 만큼 지금의 사업 포트폴리오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여기고 사업 구조 혁신에 나서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이영준 사장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성장 로드맵을 언제 내놓을지도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공장이 추가되면 한국에서 만드는 것보다 원가경쟁력이 있고,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도 좋아질 수 있다"며 "현재 웨이버를 받은 차입금의 경우 내년 말 이후 약정을 미충족 시킨다며 다시 웨이버를 받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영준 대표는 첨단소재 부문에서 오랜 경험이 있는 만큼 범용소재에서 첨단소재로 더 빨리 전환할 수 있게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롯데케미칼은 해외법인 지분을 활용한 1조30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 플랜을 추진 중이다. 미국 에틸렌글리콜(EG) 생산법인 롯데케미칼루이지애나LLC(이하 LCLA)의 유상증자 지분 40%를 처분해 6600억원을 조달했고, 6500억원 가량은 라인프로젝트 수행 주체인 PT롯데케미칼인도네시아(LCI) 지분 매각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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