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주명호 차장]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전단채)'는 홈플러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경제용어가 됐다. 개인 및 일반 투자자들이 사들인 이 전단채는 홈플러스가 기습적으로 기업회생 신청을 하면서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ABSTB를 정상 변제 대상인 상거래채권 취급하겠다고 했지만 눈길은 싸늘하다. 구체적인 변제 방안은 여전히 전무한데다 우선 변제 역시 계획하지 않고 있어서다. 투자자들의 피해 보전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금융당국도 MBK파트너스의 무책임성을 사정없이 질타했다. 지난 26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이복현 금감원장은 ABSTB 상거래채권 취급 입장에 대해 "당장 마주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핑크빛 약속을 날린 것"이라며 "사실상 거짓말에 가깝다"고 했다. 금감원은 앞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MBK파트너스에 대한 전반적인 검사에 착수한 상태다.
피해발생의 책임은 전적으로 홈플러스에 있지만 ABSTB 발행 구조는 좀 더 복잡하다. 신용카드사와 증권사가 앞, 뒤로 얽혀 있어서다. 홈플러스가 카드사로부터 법인 구매전용카드를 발급 받아 사용하면 이에 대한 매출채권이 카드사에게 발행된다.
이 매출채권은 다시 증권사로 넘어간다. 증권사는 SPC(특수목적법인)를 통해 카드사로부터 매출채권을 사들이고 이를 담보로 ABSTB를 발행, 판매한다. 구조상 카드사는 SPC에 매출채권을 넘기는 순간부터 책임소재는 사라진다. 카드사로서는 간간이 쏠리는 비난의 화살이 억울할 법하다.
하지만 구매전용카드의 성격을 살펴보면 카드사를 마냥 제3자 취급하긴 어렵다. 대표적인 무수익성 상품인 구매전용카드는 사실 외형 성장의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익은 없다시피 하지만 전체 취급액을 늘리기엔 수월하다. 실적과 별개로 업계 내 시장점유율(MS)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포지셔닝도 가능하다.
홈플러스 ABSTB 역시 살펴보면 카드사 외형 경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구매전용카드 취급액 확대에 적극적인 현대카드와 롯데카드가 관여하고 있어서다. 홈플러스 ABSTB 규모는 4618억원인데 현대카드, 롯데카드, 신한카드의 구매전용카드를 통해 담보 설정이 이뤄졌다. 이중 신한카드에 해당하는 규모는 약 280억원 수준으로 나머지는 모두 현대·롯데카드에서 나왔다.
실제로 두 카드사의 법인구매카드 취급 규모는 업계 내에서 독보적이다. 현대카드의 법인구매카드 취급액은 지난해 17조5416억원, 롯데카드는 13조8532억원에 이른다. 업계 선두인 삼성·신한카드의 취급액을 합해도 롯데카드를 넘어서지 못한다.
결국 카드사 외형 경쟁 수단의 일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키운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과정에서 여신심사를 적절히 이어가고 있는지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한 카드업계 고위 관계자는 "구매전용카드로 몇 달씩 지급을 미룬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 요인이 있다는 의미"라며 "유동화증권 확대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구매전용카드의 역할에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더 커질 비난의 목소리는 카드사와 금융당국 모두 피해갈 수 없다. 제도적으로 개선 여지를 살펴볼 수 있다면 이번 홈플러스 ABSTB 사태는 오히려 좋은 계기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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