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민승기 차장] 국내 증시에서 '유상증자'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유상증자를 둘러싼 기업과 소액주주 간의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금융감독원이 '유상증자 중점심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논란의 불씨를 댕겼다.
유상증자 중점심사는 증자비율, 할인율, 재무상황 뿐만 아니라 ▲주식 가치 희석화 우려 ▲일반주주 권익 훼손 가능성 ▲재무 위험 과다 등까지 살펴본 뒤 유상증자 효력을 승인하는 제도를 말한다.
과거에도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기업에 대한 눈치주기는 있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까지 나서며 '현미경 심사'를 예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기업들이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을 부채 상환이나 불필요한 인수합병에 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커진 탓이다.
유상증자는 기업이 주식을 새롭게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다. 기업 입장에서 이자 등 부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금융권 대출보다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유상증자가 더 손쉽고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주 발행에 따른 보유 지분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소액주주 입장에서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이 때문에 유상증자를 둘러싼 기업과 소액주주간의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오랜 갈등을 통해 국내 증시에서는 '유상증자=악재'라는 인식까지 생겨났다. 간혹 소액주주 설득에 실패해 유상증자를 철회하는 사례도 있다.
삼성·한화 등의 대기업도 유상증자를 둘러싼 소액주주와의 갈등은 피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달 초 삼성SDI는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되는 자금으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 투자, 유럽 헝가리 공장 생산능력 확대, 국내 전고체 배터리 라인 시설투자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진한 흐름을 보였던 삼성SDI 주가는 유증 발표 당일 6% 넘게 빠진 19만14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에 따른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거세다. 유상증자 계획 발표 이후 개최된 삼성SDI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주주들 간의 격한 고성이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SDI 뿐만 아니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3조6000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주주 반발에 뜨끔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영진은 긴급하게 48억원(약 7700주) 규모의 주식을 장내 매수 결정하는 등 주주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금감원은 삼성SD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하며 '현미경 심사'를 예고한 상태다. 삼성SD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입장에서는 유상증자를 자금을 확보할 때 소액주주들 이외에 또 하나의 높은 허들이 생긴 셈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금감원의 유상증자 중점심사가 자칫 기업들의 유상증자 시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삼성SD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추진 유상증자에 대한 정정요구가 발생할 경우 시장에서는 "심사 허들이 너무 높아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미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던 상장사들은 중점심사 1호 결과를 기다리며 눈치보기에 나서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분명 유상증자는 합법적인 수단이다. 때에 따라서는 유상증자가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기도 하고, 기업의 성장을 돕기도 한다. 앞뒤 가리지 않고 유상증자를 '악'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잘못됐다.
강경한 소액주주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해 기업들의 생존 기회를, 또는 성장 기회를 놓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기업의 성장이 가로막히면 대한민국 경제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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