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모주 시장에 한파가 불어닥쳤다. 통상 연초에는 증시가 활기를 띠면서 신규 상장기업들도 좋은 주가 흐름을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몰아친 한파가 연초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여기에 올해 초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혔던 LG CNS도 고전을 면치 못하자 공모주 시장은 더욱 얼어붙는 분위기다. 이에 딜사이트는 공모주 시장의 현 상황을 짚어보고 금융당국이 제시한 공모주 개선 방안에 대한 실효성도 점검해본다.[편집자 주]
[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올해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며 시장에 기대감을 높였던 LG CNS도 상장 첫날 급락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조단위의 대형주마저 상장 후 주가흐름이 좋지 않아 뒤이어 상장할 기업의 부담감도 커지고 있다. 시장에 등장할 대형주들이 구주매출 또는 재무적투자자(FI)의 비중이 큰 곳이라는 점도 약점으로 지목된다.
1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 시장에서는 SGI서울보증보험 외에도 달바글로벌, 롯데글로벌로지스, 디엔솔루션즈, SK엔무브 등의 기업이 상장을 준비 중이다. 모두 상장 후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의 대형주로 주목을 받고 있다. SK엔무브도 지난해 주관사 선정을 마쳐 '4번째' IPO에 도전한다.
다만 시장 분위기가 냉각된 상황에서 개별 종목의 이슈가 겹치면서 흥행에 어려움이 따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장 이번주 수요예측에 나서는 서울보증보험이 대표적이다. 서울보증보험은 이달 20일부터 26일까지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서울보증보험은 우선 공모구조가 구주매출로만 구성됐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조건의 발행사는 아니다. 공모로 모은 자금이 다시 회사에 투자되면서 가치를 끌어올리는 신주 발행과 다르게 구주매출은 기존 투자자의 자금 회수에만 공모자금이 쓰인다. 투자자들은 이를 감안해 신주발행 방식에 비해서 기업가치를 낮게 측정할 수 있다.
서울보증보험은 오버행 이슈(잠재적 매도 물량)로 인한 부담이 큰 종목이다. 이번에 서울보증보험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출하하는 물량은 서울보증보험 지분 중 약 10%다. 공모 후 지분율은 약 83.85%가 될 예정이다. 나머지 지분에 대해서도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만큼 빠른 시일 내 회수할 의무가 있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의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은 청산이 2027년 12월31일로 정해져 있다. 상장 이후 지속적으로 입찰이나 블록딜을 통해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투자자에게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연초에 '세 번째 IPO'에 나설 계획이던 케이뱅크는 도전하지 않고 잠정 후퇴를 결정했다. 케이뱅크는 지난 2023년과 2024년 하반기 두 차례 이미 IPO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다시 신고서를 제출하고 1~2월 중 공모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향후 IPO를 재추진하겠다고 돌연 입장을 바꿨다.
업계에서는 케이뱅크 상장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로 꼽히던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 의존도가 오히려 미래 성장요인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난해 누적 순익 1224억원을 기록해 전년대비 3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상 암호화폐 시장이 활성화돼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예상 시가총액이 4조~5조원이던 케이뱅크가 상장을 철회하면서 공모주 시장의 규모도 예상보다 작아졌다.
'K뷰티'를 앞세운 달바글로벌도 이미 한국거래소 예비심사 승인을 받고 증권신고서 제출을 앞두고 있다. 달바글로벌은 당장 증권신고서를 내기보다 2024년도 연간 결산을 모두 끝낸 뒤 이를 반영해 밸류에이션을 산정할 예정이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온 만큼 지난해 연간 실적까지 반영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실적이 상승세를 보이지만 달바글로벌 역시 FI가 많은 주주구성이 약점으로 지목된다. 반성연 대표의 보유 지분율은 16.7% 수준에 불과하고 KTBN 13호 벤처투자조합(보유 지분율 13.4%), 코리아오메가프로젝트오호조합(11.3%) 등이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상장 이후 주요 FI들의 잠재적 매도 물량(오버행) 이슈에 대한 우려도 크다. FI는 본질적으로 엑시트(자금 회수)를 목표로 하므로 상장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차익 실현을 위해 지분을 대량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옛 SK루브리컨츠'였던 SK그룹 윤활유 사업 자회사 SK엔무브도 오는 6~7월 코스피 입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벌써 4번째 IPO에 도전하는 SK엔무브도 LG CNS, 서울보증보험와 마찬가지로 구주매출 비중이 높다. PEF(사모펀드) 운용사가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어 공모 과정에서 1조원 규모의 구주매출을 포함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주매출의 비중이 높은 대형주들의 잔혹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보증보험도 이미 지난해 수요예측에 실패해 상장을 철회했고, FI의 입김이 쎈 케이뱅크도 수요예측 단계에서 두 차례나 상장을 포기했다. 케이뱅크는 공모 물량의 절반이 구주매출로 구성됐다.
IB업계 관계자는 "대형주 IPO의 공모물량이 예년보다 많은 5조~6조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일부 기업은 이미 '철회' 결정을 내리고 있다"며 "재수, 삼수에 나서는 발행사가 많은 것이 올해 IPO 시장의 특징이지만 연초 분위기로 보면 또다시 공모시기를 고려할 발행사도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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