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모주 시장에 한파가 불어닥쳤다. 통상 연초에는 증시가 활기를 띠면서 신규 상장기업들도 좋은 주가 흐름을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몰아친 한파가 연초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여기에 올해 초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혔던 LG CNS도 고전을 면치 못하자 공모주 시장은 더욱 얼어붙는 분위기다. 이에 딜사이트는 공모주 시장의 현 상황을 짚어보고 금융당국이 제시한 공모주 개선 방안에 대한 실효성도 점검해본다.[편집자 주]
[딜사이트 김호연 기자] 금융감독원의 기업공개(IPO) 관리감독 수위가 올해 초 절정에 이르고 있다. 2023년 말 '파두' 사태 후 국내 증시에 악재가 거듭되자 투자자 보호를 위해 발행사의 증권신고서 정정제출 등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강화하는 분위기 탓이다.
일부 발행사들은 금감원의 정정신고서 제출 압박으로 상장 일정이 변경되자 강한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정정신고서 제출로 IPO에 차질이 생기면 기업의 자금조달 계획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IPO 일정이 미뤄진 사이에 투자심리 악화로 원하는 규모의 공모자금을 유치하지 못하더라도 금감원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게 발행사들의 설명이다.

◆흑자 경영에도 '무언의 압박'…기관 수요예측일 연기 속출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정정신고서 제출 등을 사유로 수요예측을 미룬 IPO 예정기업은 이달에만 6곳이다. ▲한텍 ▲대진첨단소재 ▲더즌 ▲티엑스알로보틱스 ▲에이유브랜즈 ▲심플랫폼 등은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일정을 기존 예정일보다 2주 이상 연기했다.
기존 증권신고서에 기재한 내용을 금융당국이 심사한 뒤 수정을 요청한 것이 수요예측 연기의 직접적인 배경이라는 게 IPO 주관사와 발행사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일반청약을 마무리한 대진첨단소재는 결산일 이후 재무정보 관련 투자위험 등을 지난해 12월 27일 증권신고서 최초 제출 이후 수요예측 전까지 총 6차례 수정했다.
물류·로봇자동화 기업 티엑스알로보틱스는 지난 7일 증권신고서를 정정하며 국내 물류시장의 성장성과 턴키 사업의 특징, 최대주주 유진로지스틱스의 재무건전성 관련 설명을 추가했다. 그러면서 11일 예정돼 있던 수요예측을 이달 26일로 연기했다. 패션 유통기업 에이유브랜즈 역시 할인율을 끌어올리고 유사기업을 재선정하며 수요예측을 이달 27일에서 3월 13일로 미뤘다.
IPO 도전 기업들이 연달아 상장일정 연기 및 증권신고서 정정에 나선 것은 금감원이 지난해 초 발표한 '투자위험요소 기재요령 안내서 개정본' 때문이다. IPO 기업들은 안내서 개정본에 따라 ▲감사 받은 최근 분기 다음달부터 증권신고서 최초제출일 직전월까지의 매월 잠정매출액과 영업손익 ▲잠정실적에 대한 향후 검토 시 차이 발생 가능성 등에 대한 언급 ▲상장 전까지 회사 재무실적에 영향을 미칠 영업환경 변동 전망 등을 미흡하게 기재했을 경우 이를 보완해야 한다. 이를 반영한 정정신고서를 제출할 경우 효력 발생일 및 수요예측일 등 변동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은 금감원의 방침에 따라 지난해부터 증권신고서에 투자위험요소 기재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의 최근 행보는 전례가 없다고 여길 정도로라는 게 업계 전반의 평가다.
상장 추진 기업의 IPO 주관을 맡은 증권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2023년 말 발생한 '파두 사태' 이후 관리감독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며 "잇따른 악재로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되자 금감원 자체적으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옥석 가리기'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활동 위축" vs "건강한 시장 위한 자정 노력"
금감원의 엄격해진 관리감독에 올해 초 IPO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은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정신고서 제출로 상장 일정이 2주 이상 미뤄지는 사례가 계속 나오면서 계획한 자금조달에 차질이 생겼다는 호소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 IPO를 추진하고 있는 기업 대표 A 씨는 "해외 사업 확대 등을 위해 최대한의 자금을 유치하는 게 시급한데 상장 일정에 변동이 생기면 그 사이 시장의 투자심리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며 "우리가 주관사와 충분히 논의하고 작성한 증권신고서인데 금감원에서 괜한 몽니를 부릴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경영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금감원의 제제가 강해질수록 기업들은 사업 확장과 관련된 투자유치가 어려워진다"며 "세계 경제가 빠르게 변화하는 마당에 기업활동이 위축되면 국가 경쟁력 차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기업의 목소리에도 금감원은 엄격한 대응 기조를 유지할 전망이다. 대통령 탄핵 등 국내 정치·경제의 변동성이 확대된 만큼 국내 개인투자자 보호장치 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증권업계의 관측이다. 현재로서는 국내 증시를 건강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는 이유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수 차례 정정신고서를 제출한 대진첨단소재를 IPO 모범사례로 지목한다. 대진첨단소재의 공모가는 최근 수요예측에서 희망공모가 하단(1만900원)을 하회한 9000원으로 확정했지만 이어진 일반청약에서 1241.45: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했다. 금감원의 요청에 따라 투자정보를 상세히 기술한 것이 시장친화적 접근, 2차전지 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과 맞물려 양호한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는 분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의 요구사항이 이전과 비교해 상당히 자세하고 까다로워진 느낌이 드는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증권신고서 정정을 통해 투자자가 기업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충분히 살펴보도록 상장 일정 변경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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