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민승기 차장] 최근 정부가 '좀비기업'에 대한 메스를 꺼내 들었다. 시가총액과 매출액에 따른 상장폐지 요건을 단계별로 강화키로 한 것이다. 좀비기업은 '되살아난 시체'를 뜻하는 좀비에 비유한 것으로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을 뜻한다.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은 시가총액과 매출액에 따른 상장폐지 요건을 단계별로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코스닥 상장사는 시총 300억원·매출액 100억원, 코스피 상장사는 시총 500억원·매출액 300억원에 미치지 못할 시 상장폐지 시키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해당 요건은 내년부터 2029년까지 3년간 3단계에 걸쳐 강화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감사의견 미달요건 기준 강화, 상장폐지 절차 효율화 등의 방안도 같이 추진한다.
금융당국이 이 같은 이 조건으로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최종 상향 조정을 마쳤을 때 코스피는 전체 788개사 중 62개사(약 8%), 코스닥은 1530개사 중 137개사(약 7%)가 상장폐지 대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동안 정부는 거시경제 회복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고 부실기업에 대해 구조조정 대신 금융지원이라는 단기처방을 내리는데 급급했다. 기업 회생기회 부여,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둔 제도 운영 탓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일시적인 고용과 경제의 안정성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부실기업만 늘렸다. 실제로 한국경제인협회가 한국과 주요 5개국(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한계기업 비율은 작년 3분기 기준 19.5%로 집계됐다. 국내 상장사 5곳 중 한곳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내고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부실기업이 한정된 시장 수요를 잠식하고 노동 및 자본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해 정상기업의 고용과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대표 사례가 일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장기 침체가 부실기업을 제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경제 충격을 막기 위해 부실기업에 다양한 금융지원을 펼치며 연명시켰다. 퇴출됐어야 할 기업들에 지원한 자금은 부실채권으로 돌아왔다. 이는 정상기업으로의 투자 축소로 이어지는 등 악순환이 일어나며 일본 경제가 장기 저성장에 빠지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됐다는 평가다.
다행히 한국 정부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과감히 칼을 빼들었다. 부실기업을 퇴출하는 과정은 분명 고통스럽고 험난하겠지만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수다. 생산성이 낮은 부실기업이 아닌 성장 가능성이 높고 창의적인 신규진출 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부실기업의 퇴출은 결국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비움에서 싹튼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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