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정동진 기자]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지난해보다 다소 위축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국의 심사 기준이 전반적으로 강화되면서 상장예비심사 단계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상장 절차를 자진 철회하는 기업들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IPO 시장 회복을 위해서는 내년 1분기 '대어'로 꼽히는 빅딜(공모규모 1조원 이상) IPO의 흥행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승창 KB증권 ECM본부장은 3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딜사이트미디어그룹 비전선포 및 자본시장의 미래'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올해 IPO 시장은 기술 성장 기업에 대한 심사가 굉장히 강화됐고, 그 결과 상장예비심사 승인율이 하락했다"며 "일선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엄격해진 당국의 심사 기준을 더욱 크게 체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빅딜(Big Deal)의 부재는 업계에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며 "IPO 시장에서 빅딜은 투자자들의 수익률 및 공모 시장의 자금 유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데, 올해 성사된 IPO 빅딜 수가 작년 이맘때 쯤 업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심사기준 강화로 상장예심 승인율↓…"미래 예상실적 검증 까다로워져"
실제 올해 상장을 추진한 기업들의 상장예비심사 승인율은 예년에 비해 크게 줄었다. 지난 2021~2023년 코스닥시장의 상장예비심사 승인율은 72~78% 수준이었으나, 올해는 이날까지 총 115건 중 75건만이 승인되며 65%로 감소했다. 특히 상반기 기준으로는 56건 중 22건이 미승인되거나 철회되며 약 40%의 기업들이 상장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미승인·철회 기업 증가의 원인으로는 기술성 평가 트랙을 밟는 기업들의 예상 매출액, 즉 실적에 대한 심사기준이 엄격해진 점이 꼽힌다. 과거에는 기업의 기술이 얼마나 혁신적인지, 혹은 해당 기술이 국가 기반 산업이 될 수 있는지 등을 중심으로 상장 심사가 이뤄졌으나, 최근에는 시장성에 대한 검증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까닭이다.
유 본부장은 "과거에는 수주 기반 기업의 경우 수주잔고가 2~3년 정도 있으면 예상 실적에 대해 어느정도 타당한 근거가 있다고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는데, 최근에는 해당 수주가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 따지는 등 보다 꼼꼼한 심사가 이어지고 있다"며 "또 과거에는 심사기간 내에 발행사나 주관사에 미진한 부분에 대한 충분한 소명 기회를 줬었는데, 최근에는 심사 기간이 줄어들면서 좀 더 빨리 미승인 내지 철회를 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 "빅딜 성사돼야 IPO 시장 유동성 안정"…내년 상장 예정인 케이뱅크·DN솔루션즈 등 주목
유 본부장은 국내 IPO 시장이 반등하기 위해서는 '조 단위' 빅딜이 성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큰 규모의 IPO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공모주 펀드로 자금이 유입되고, 이를 통해 IPO 시장의 유동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대형 딜이 없으면 아무리 공모주 시장이 활황이 돼도 공모주 펀드 수익률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며 "200~300억 규모의 공모 딜에서 공모주 펀드가 받는 금액은 많아야 1~2억 수준인 만큼 수익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2년 1분기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하면서 공모주 펀드 설정액이 상당히 높아졌었는데, 이후 빅딜이 뜸해지며 펀드 설정액이 쭉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며 "공모주 펀드 수익률이 떨어지면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시장 자체도 열기가 식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올해 말 상장 예정인 엠엔씨솔루션을 비롯해 상장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케이뱅크, 내년 1분기 상장 예정인 DN솔루션즈, LGCNS, 서울보증보험 등이 내년 IPO 시장의 업황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는 "내년 1분기에만 빅딜이라고 할 수 있는 IPO가 4개가 몰려 있다"며 "이들의 공모가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2025년 한 해 시장 분위기가 많이 좌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상장 당일 주가 변동성 줄이려면 의무보유비율 높여야"…"내년 상장기준 더 엄격해질 것"
최근 시장에서 지적되는 IPO 기업들의 상장 당일 과도한 주가 변동성 문제에 대해서는 기관들의 의무보유확약 비율이 늘어나야 할 것으로 봤다. 현재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들의 의무보유확약 비율이 수년째 10% 내외에 그치고 있어, 장기 투자보다 단기 매매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본부장은 이러한 상황이 중소형 기업의 IPO 과정에서 공모가 산정과 일반 청약 경쟁을 다소 과열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공모주라는 금융상품의 메리트는 적정 밸류에이션 대비 20~30%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인데, 공모주의 가격이 공모가 상단 대비 33% 높은 가격에 형성돼도 일반청약 경쟁률은 높은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상장 첫날 변동성이 굉장히 커, 투자자들이 첫날 다 매도 하고 나오면 된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들이 IPO를 하는 이유는 자금 조달 목적 외에도 자본시장에 진입해 지속가능한, 중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갖추기 위해서인데, 지금처럼 가격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실적이 잘 나와도 주가가 잘 움직이지 않게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기관들의 의무보유 확약비율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내년 당국의 심사 기조에 대해서는 기술특례 상장사들의 특례기간 종료로 인해 엄격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는 "기술 특례를 통한 상장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이 지난 2019년인데, 이들에게 부여된 특혜가 내년 종료된다"며 "기술 평가 기업 중 일부가 관리 종목으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로 인해 내년 기술특례 트랙을 통해 IPO에 도전하는 기업들에 대한 심사기준이 굉장히 타이트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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