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한은비 기자] 어두컴컴한 세계에서 "거래해(Make a trade)"를 주문처럼 외는 펀드 매니저의 영혼이 '조'와 '22번'을 덮친다. 죽음을 앞둔 영혼(조)과 탄생을 준비하는 영혼(22번) 간의 만남을 그려낸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육체와 정신 사이의 공간'에서 길을 잃은 혼들을 두고 "어떤 이들은 불안과 집착을 해결하지 못해 삶과 단절되지"라고 말한다.
이후 이어지는 "또 헤지펀드 매니저네"라는 영화 속 대사는 자산 운용업의 고됨을 보여준다. 펀드 운용은 타인의 돈을 모집해 굴리는 일이다. 그렇다보니 위탁운용사(GP)들을 가장 근심하게 하는 건 단연 유한책임투자자(LP)들일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는 개인 투자자들이다.
일반적으로 개인들은 기관 투자자들에 비해 금융업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운용사는 개인 LP들에게 투자 관련 정보를 보다 상세히 설명해야 할뿐더러 사후관리 보고를 수시로 요청 받기 일쑤다. 특히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라임·옵티머스 사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에 따라 불완전판매를 극히 경계하는 현 금융감독원의 태세는 GP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문제는 '열 번이라도 읽어 제대로 알려줘라'는 수준의 투자자 보호 기조가 되레 개인들의 초기기업 투자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민간 자금을 유도해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하려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정책 방향과도 어긋나는 지점이다.
정부는 조세특례제한법을 통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개인들에게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벤처투자조합에 참여한 개인 투자자들은 투자금액의 10%에 대해 소득공제를 적용 받을 수 있고 지분을 3년 동안 보유할 경우 양도소득세가 면제된다. 개인투자조합에 투자한 개인은 투자금 규모에 따라 더 큰 비과세 혜택(투자금 ▲3000만원 이하 100% ▲3000만원~5000만원 70% ▲5000만원 초과 30% 소득공제 적용)을 누릴 수 있다. 다만 상당수의 개인투자자들은 투자 리스크(위험)를 줄이기 위해 벤처캐피탈(VC)이나 신기술사업금융회사 등 전문 금융사가 운용하는 벤처펀드를 주로 택하는 분위기다.
여러 이점들 때문에 개인들의 관심은 벤처투자조합 출자에 쏠리고 있으나 펀드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기관들은 오히려 개인들의 자금을 꺼리는 상황이다. 강화된 투자자 보호 의무에 투자기관들은 각 개인들이 투자자로 적정한지 더 엄격하게 살펴본다. 개인들의 투자를 권장하고 민간 모험자본의 저변을 확대하려면 투자 절차를 간소화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설명이 점점 많아지고 이런저런 정보를 제출하라는 요구가 난무하고 있는 셈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금융감독원의 우선순위가 엇갈리면서 전문 투자기관과 개인 투자자 사이의 수요 간극은 벌어지고 있다. 고금리의 영향으로 자금줄이 마르고 있는 기관들이 속출하고 있는 만큼 벤처시장으로의 민간 자본 유입은 필요하다. 동시에 '고위험·고수익'이라는 투자업계 특성을 고려해 펀드 운용사들의 책임 부담도 어느 정도 덜어줘야 한다. 투자자에게 부여하는 혜택을 확대하면서 운용기관의 고지 의무를 완화하는 적정선을 찾는 게 시급하다. 높은 업무 강도에 개인 투자자들에게서 발길을 돌리고 길을 헤매고 있는 펀드 매니저들의 영혼을 도로 일깨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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