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은비 기자]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네가 무엇을 고를지 아무도 모른단다."

1994년 10월 개봉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명대사다.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는 남들보다 부족한 지능과 불리한 신체적 조건을 지녔으나 우연의 연속으로 미식축구 선수, 전쟁 영웅, 탁구 국가대표에 이어 백만장자에까지 이른다. 언뜻 보면 단순 행운 같지만 모든 결과는 자신의 결정에 온몸을 내던진 그의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벤처캐피탈(VC) 업계를 출입하며 심사역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의 업무가 포레스트의 일생과 꼭 닮았단 생각이 종종 든다. 기관투자가들은 다년간 이어지는 장기 투자를 지향하기에 이들에게 시장은 초콜릿 상자와도 같다. 투자한 기업이 '달달한 수익'을 안겨줄지, '씁쓸한 뒷맛'을 남길지는 예언가가 아닌 이상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잭팟' 포트폴리오 뒤에는 투자 전후로 레퍼런스(참고자료)를 수차례 확인하고 철저하게 사후관리를 지속해온 운용인력들의 공이 언제나 깔려있다. 이는 유한책임투자자(LP)들이 출자를 결정할 때 투자조합의 대표펀드매니저와 핵심운용인력이 누군지 중요하게 살펴보는 이유다. LP들이 위탁운용사(GP)들의 펀드 운용인력 교체 시 관리보수 삭감, 출자사업 지원 제한 등의 페널티(벌칙)를 제기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문제는 운용인력 유지가 LP와 GP 간의 신뢰를 두텁게 하는 기본 요인이지만 금융그룹 계열 VC들은 해당 조건을 쉽사리 충족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금융지주들이 대개 내부통제 문화에 따라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에서도 장기 근무를 제한하고 있어서다.

VC가 운용하는 자펀드는 통상 존속기간이 8년이다. 반면 금융지주 계열 VC 대표의 임기는 길어봐야 5년 내외로 알려진다. 대표들이 대표펀드매니저 등으로 활동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정기 임원인사 때면 운용인력을 바꿔야 하는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임기 만료로 인한 은행 계열 VC들의 인력 교체는 출자 이전에 예상할 수 있는 만큼 LP들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게 통념적이다. 그러나 LP들로부터 페널티를 받을 수 있다는 부담을 매년 수반한다는 점은 펀드 운용·관리 측면에서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최근 신한벤처투자는 신한금융지주가 추진한 계열사 인사로 이동현 전 대표가 도맡던 펀드들의 대표펀드매니저를 전부 교체했다. 운용인력 변경 과정에서 일부 펀드는 LP들의 협의에 따라 관리보수 삭감 등의 조치를 받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 계열 VC들은 회사 특성상 운용인력 교체 등의 리스크(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당 VC들에 출자를 꺼리는 LP들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KB인베스트먼트, 신한벤처투자, 하나벤처스, 우리벤처파트너스, IBK벤처투자 등 현재 국내 주요 은행들은 모두 계열사 VC를 보유하고 있다. 타 VC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해당 VC들은 업계 성격과 상반되는 그룹 문화에 대해 대응책을 고심할 시기다.

현대 소비자들은 보다 달콤한 초콜릿을 구매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남긴 후기를 참고한다.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오면 입소문을 탄 특정 브랜드의 제품들은 순식간에 품절되기 일쑤다. 은행계 VC들도 소속 구성원들에 마냥 의지하기보단 회사 자체의 신뢰도를 키워내야 한다. 전사적자원관리(ERP) 등의 정보 시스템 도입으로 빈틈없는 업무 인수인계 체계를 갖춤으로써 비교적 잦은 인력 변경 문제를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