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업의 본질은 타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에 있다. 하지만 그간 국내 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는 주총 시즌마다 기계적 찬성에 그치는 거수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CEO의 직접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을 본격화한 배경이다. 이에 딜사이트는 주요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분석해 수탁자책임 이행 수준을 진단해본다.
[딜사이트 윤종학 기자] VIP자산운용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내놓은 반대는 전체의 3.2%로 수치만 놓고 보면 업계 평균을 밑도는 수준이다. 조용한 행동주의를 표방하며 주주총회 이전 사전협의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하우스는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는 소수주주 다수결(MOM) 원칙 등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9일 딜사이트가 VIP운용의 2025년 의결권 행사 내역을 분석한 결과 전체 316건 중 반대는 10건(3.2%)으로 전년(141건 중 2건·1.4%)보다 건수와 비율 모두 상승했다. 대상 법인도 21개사에서 38개사로 확대됐고 2024년에 5건이었던 불행사는 올해 단 한 건도 없었다.
기업의 자본배분에 대한 반대표 행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VIP운용은 SK하이닉스의 2025년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주당배당금이 전년 대비 800원 증가했음에도 "회사의 이익 성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수준으로 주주환원율이 하락했다"고 판단했다. 절대 배당액이 아니라 이익 성장률 대비 환원 비율이 기준이었다.
같은 잣대는 이엔에프테크놀로지에도 적용됐다. 주당배당금이 전년 대비 50원 올랐지만 "이익 성장 대비 주주환원율이 하락했다"는 이유로 재무제표 승인에 반대했다.
월덱스에는 더 직접적이었다. 순현금 1500억원에 연간 잉여현금흐름이 500억원 수준임에도 배당성향이 4%, 3개년 평균 2%에 못 미친다는 점을 공시에 명시하며 재무제표 승인·이사 선임·보수 규정 제정 등 4개 안건을 반대했다.
임원 개인의 자본배분 판단에도 책임을 물었다. 원익머트리얼즈의 오동근 CFO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하며 "2024년 9월 계열사 케어랩스로부터 불필요한 부동산을 매수해 보유 현금을 낭비한 것에 CFO로서 책임이 있다"고 공시에 직접 명시했다. 특정 의사결정의 책임을 임원 개인에게 귀속시켜 선임 반대 근거로 삼은 방식은 국내 기관투자가 가운데서도 흔치 않은 사례로 꼽힌다.
다만 VIP운용의 반대율 3.2%는 2024년 업계 평균인 6%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는 조용한 행동주의 하우스의 특징에서 비롯된 결과로 풀이된다. VIP운용은 피투자 기업과의 사전 협의를 원칙으로 삼는다.
김민국 대표는 "사전에 최대한 협의를 해서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며 "반대표를 행사했다는 결과에만 그치기 보다 사전 협의를 통해 최대한 반대할 만한 사안을 없애간다는 게 하우스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반대율을 높여 회사들이 고민하게 만드는 방향도 바람직하지만 행동주의 하우스 특성상 기계적인 반대보다는 실질 변화를 이끌어내는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간 요구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소수주주 다수결(MOM) 원칙의 적용 범위 확대를 촉구했다. MOM은 이해관계가 있는 대주주를 의결에서 배제하고 나머지 소수주주만으로 가부를 결정하는 원칙이다.
김민국 대표는 "이해관계자가 자신의 보수나 합병 안건에 직접 표를 행사하는 것은 상식의 영역에서도 맞지 않는다"며 "제척 사유를 보다 넓게 해석해 소수주주의 의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당국이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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