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홈플러스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으로 시작된 자본시장 충격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특히 비우량 등급 채권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기업금융(IB), 크레딧 시장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한편, 감정적인 책임론이 확산되면서 기존의 시장논리와 맞지 않는 선례를 남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용등급 BBB+ 이하 등 비우량 등급 채권에 대한 수요는 최근 시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채권업계 관계자는 "A-급에도 매수 주문이 원활히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금리 인하 전환 기대감이 확산되며 시중 금리는 다소 낮아지고 있지만, 비우량 등급 회사채 금리는 오히려 상승 압력을 받고 있지만 오히려 투심은 위축됐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논란이 커지면서 비우량사의 구조화채권, 기업어음(CP) 등에 대한 투자와 판매 구조 자체를 비판하는 분위기로 확산돼 투자 수요 확보가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홈플러스가 발행한 ABSTB(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의 상거래 채권 분류에 대해서도 원칙없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상품에 개인투자자들이 참여하면서 상거래채무로 분류할 것인지, 금융채무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 지속적인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ABSTB의 기초자산이 홈플러스의 상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카드대금이라는 점에서는 상거래로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카드회사들과 '역팩토링' 약정을 체결했다는 점에서는 카드회사에 대한 금융부채의 성격이 강하다. 홈플러스는 기존 공시에서 금융부채로 분류한 ABSTB에 대해 투자자들의 상당수가 개인이라는 점을 고려해 상거래채권으로 분류하고 상환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이 같은 방침을 밝히면서 '채권자 간 형평성' 논란도 불거졌다는 점이다. 회생 절차의 기본 원칙인 '동일 조건 하의 채권자 간 공정성'과 충돌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우선변제될 가능성을 높인 상황이지만 이 문제로 회생계획안에 대한 채권단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회생법원에서 끝내 상거래 채권으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남아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발표와는 달리 신용카드 대금채권을 회생절차에서 '상거래채권'으로 그대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회생법 제132조 제1항은 '채무자의 거래상대방인 중소기업자가 그가 가지는 소액채권을 변제받지 아니하면 사업의 계속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때에는 법원은 회생계획인가결정 전이라도 관리인 등의 신청에 의하여 그 전부 또는 일부의 변제를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미 중소기업자들은 물품대금을 다 결제받은 상태이므로, 향후 홈플러스가 영업을 계속하는 데에 반드시 이 변제가 필요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법원이 그에 대한 조기변제를 허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홈플러스의 원칙없는 상거래 채권 분류가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홈플러스 관련 구조화채권을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한 것 자체를 문제 삼는 시각도 제기되면서 관련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크레딧 시장 구조상 비우량 등급 채권은 기관투자자보다 개인투자자의 수요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단기물 중심의 구조화 상품은 고정적인 수익률을 추구하는 리테일 자금의 수요에 맞춰 설계되는 것이 일반적인 탓이다.
채권업계 관계자는 "비우량채를 개인에게 판매했다는 이유만으로 판매사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구조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품의 위험성과 수익률 구조에 대해 충분한 고지를 하지 않은 경우는 당연히 문제지만, 개인이 주요 수요자인 시장에서 리테일 셀다운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홈플러스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이 일정부분 사재를 출연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GP(General Partner)의 개인이 투자 실패에 대해 금전적 책임을 지는 관행은 매우 예외적이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투자 펀드의 GP로, 일반적인 구조상 운용 성과에 따른 성과보수를 받는 구조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하이리스크-하이리턴 구조는 자본시장 투자에서 기본 전제"라며 "상품 구조나 정보 제공의 투명성 문제는 분명히 짚어야 할 대목이지만,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이 모두 발행사나 운용사에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시장 자체의 리스크 감내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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