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TF 시장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에서 개별 종목의 비중을 줄이고, ETF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은 이러한 트렌트에 맞춰 새로운 ETF를 설계하고 상장한다. 딜사이트는 견실한 ETF 산업의 성장과 건전한 ETF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ETF 유튜브 채널 <ETF네버슬립>과 ETF 뉴스레터 <ETF네버슬립>을 운영하고 있다.

[딜사이트 심두보, 노우진 기자] 두 미국 대표지수 ETF인 S&P 500 ETF와 나스닥 100 ETF를 둘러싼 자산운용사 간의 수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에 이뤄진 연속적인 총보수 인하는 이 같은 경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 그리고 KB자산운용은 자사의 미국 S&P 500 ETF 및 나스닥 100 ETF의 총보수를 0.01%보다 한참 낮게 내리는 강수를 뒀다.
ETF의 사용자, 즉 투자자는 나쁠 것은 없는 입장이다. 다만, 어떤 것을 기준으로 ETF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ETF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 총보수와 실비용, 실질 수익률 등 여러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 각기 다른 총보수·실비용 순위
투자자가 실제 부담하는 비용, 즉 실비용은 △총보수 △기타비용 △매매·중개 수수료율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자산운용사들이 인하했다고 언급하는 부분은 총보수다. 총보수는 다시 운용·판매·신탁·사무 등 네 가지 보수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자산운용사가 이들 중 인하할 수 있는 보수는 운용 보수다. 운용 보수는 자산운용사의 수익이 발생하는 부분이기 때문. 즉, 자신들의 살을 깎아 총보수를 낮추는 것이다.
이번 총보수 인하 경쟁에서도 결국 내려간 것은 운용 보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기존 0.05%이던 운용보수를 0.0002%로 내렸다. 자신들이 받을 수 있는 보수를 250분의 1로 줄인 셈이다. 삼성자산운용은 0.009%이던 기존 운용 보수를 9분의 1 수준인 0.0001%로 낮췄다. 가장 마지막 총보수를 인하했던 KB자산운용은 0.001%이던 운용 보수를 10분의 1인 0.0001%로 내렸다.
이렇게 정해진 총보수에 기타비용과 매매·중개 수수료율이 더해진다. 기타비용에는 예탁 및 결제비용, 회계감사비용, 채권평가보수, 펀드평가보수, 지수사용료, 법률자문비용 등이 들어가 있다. 매매·중개 수수료율은 ETF가 포트폴리오 종목을 매수하고 매도하는 데에 발생하는 비용을 뜻한다.
모든 비용을 더하면 투자자가 결과적으로 부담하는 실비용이 된다. 총보수와 기타비용과 매매·중개 수수료율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동된다. 즉, 실비용은 계속 변한다. 일반적으로 기타비용과 매매·중개 수수료율은 규모의 경제 법칙에 따라 ETF의 운용자산규모(AUM)이 클수록 낮아지게 된다.
S&P 500 및 나스닥 100 ETF의 총보수가 가장 낮은 자산운용사는 KB자산운용이다. 이 자산운용사의 미국 대표지수 ETF인 RISE 미국S&P500과 RISE 미국나스닥100의 총보수는 각각 연 0.0047%와 0.0062%다. 그 다음으로 낮은 곳은 삼성자산운용으로, KODEX 미국S&P500과 KODEX 미국나스닥100의 총비용은 0.0062%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두 ETF인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의 총비용은 0.0068%다.
하지만 실비용으로 따지면, 순위는 달라진다. S&P 500 ETF의 경우(2월 12일 기준), 실비용이 가장 높은 자산운용사는 삼성자산운용(0.2255%)이다. 그 뒤를 KB자산운용(0.1687%)과 미래에셋자산운용(0.1387%)이 잇고 있다. 나스닥 100 ETF에서는 또 다르다. KB자산운용의 실비용이 0.1886%로 가장 높고, 삼성자산운용(0.1844%)과 미래에셋자산운용(0.1536%)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종합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ETF가 가장 낮은 실비용을 보이고 있다.
총비용은 극히 낮은 수준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기타비용과 매매·중개 수수료율이 실비용의 우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 실비용 이미 반영된 주가 수익률 비교해야
총보수와 실비용을 비교해 ETF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동일한 기초자산을 둔 ETF 중 하나를 선택할 경우에는 실제 수익률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A 자산운용사의 고위 임원은 "ETF의 주가에는 이미 비용이 반영된 이후의 숫자"라면서 "수정기준가로 산정된 성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준가(NAV)란 1주당 순가산 가치를 의미하는데, 모든 비용을 제한 후의 ETF의 실제 가치를 뜻한다. 하지만 기준가로 ETF 성과를 비교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동일 지수를 추적하더라도 자산운용사는 각자의 시스템과 판단에 따라 분배금을 상이하게 지급하기 때문. 이 분배금의 차이까지 반영한 게 바로 수정기준가다. 분배금 재투자를 가정해 산출한 수정기준가는 같은 기초자산을 둔 ETF의 성과를 비교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수치인 셈이다.
수정기준가 기준 3년 수익률이 가장 좋은 ETF는 KODEX 미국S&P500과 KODEX 미국나스닥100이다. 3년간 누적 수익률은 각각 69.19%와 81.51%다. 다음 순위는 KB자산운용의 RISE 미국S&P500과 RISE 미국나스닥100으로, 이 기간 누적 수익률은 각각 68.45%와 80.80%다. 그리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의 수익률은 68.20%와 80.52%다.
S&P 500 ETF와 나스닥 100 ETF를 수정기준가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1위와 3위의 3년 수익률 차이는 두 경우 모두 0.99% 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들 자산운용사들의 연간 실비용의 차이가 커봐야 0.05% 포인트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장기 수익률이 ETF를 선택할 때 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국내 B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같은 지수를 추종한다고 해도 각 ETF가 내는 퍼포먼스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ETF의 규모, 자산운용사의 역량과 경험이 실제 수익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의 대대적인 총보수 인하 탓에 투자자가 체감하는 비용상의 차이는 사라졌다"며 "이제 누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장기 수익률을 낼 것인가의 싸움으로 넘어갔다"고 진단했다.
◆ 사실상 미끼 상품이 되어버린 미국 대표지수 ETF
지나친 보수 경쟁보다는 ETF의 실제 퍼포먼스, 그리고 다양성과 혁신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열된 보수 경쟁은 자산운용사의 사업성을 훼손하며,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ETF 산업의 질적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국내 C 자산운용사의 한 운용역은 "미국의 ETF 시장은 오랜 역사의 거대한 자산운용사가 중심을 잡고 있는 한편, 신생 자산운용사가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고 있다"며 "이들은 모두 안정적인 수익을 기반으로 전체 ETF 시장을 키워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국내의 환경은 극소수의 자산운용사가 시장 성장을 주고하고 있는 가운데, 나머지는 이제야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구조"라며 "과도한 보수 싸움은 오히려 후발 주자의 성장을 제한함으로써 장기적인 경쟁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미국 대표지수 ETF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은 굉장히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보수를 내린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의 S&P 500 ETF와 나스닥 100 ETF의 총 합계 자산운용 규모(헷지 ETF는 제외)는 12조 8500억 원과 7조 7300억 원가량이다. 둘을 합치면 20조 원이 넘는다.
국내 ETF 시장의 전체 규모는 2월 11일 기준 185조 8184억 원인데, 이들 3사의 미국 대표지수 ETF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약 11%에 육박하는 셈이다.
이처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대표 ETF이지만, 자산운용사가 이들로부터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매우 제한적이다.
미국 대표지수 ETF 중 가장 규모가 큰 상품은 TIGER 미국S&P500로, 순자산은 8조 18억 원이다. 이 규모가 1년 동안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시,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벌어들일 운용 보수는 1600만 원이 고작이다. TIGER 미국나스닥100에서의 수익은 954만 원 정도다.
미래에셋자산운용보다 순자산도 작고 운용보수도 절반인 삼성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의 수익은 더 낮을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조건을 가정했을 때,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S&P500과 KODEX 미국나스닥100 두 상품으로 벌어들일 연간 수익은 590만 원 정도다. KB자산운용의 경우는 189만 원에 불과하다. 이들 3사의 매출 및 인력 규모에 비하면 사실상 무의미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S&P 500 ETF와 나스닥 100 ETF가 사실상 '미끼상품'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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