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캐피탈(VC)의 투자금 운용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만기가 임박해 투자금 회수가 절실한 펀드는 쌓여가는데 시장 침체로 기업공개(IPO)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VC들에게 펀드의 지분이나 포트폴리오 구주를 인수해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이른바 '세컨더리 펀드'가 단비가 되고 있다. 시장의 주목을 받으면서 투자금 소진 속도가 1년 내외로 빨라질 정도다. 딜사이트는 최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세컨더리 시장의 현황을 알아보고 업계에서 구사하는 전략과 한계점을 살펴본다.
[딜사이트 한은비 기자] 국내 벤처캐피탈(VC)들의 주요 투자금 회수(엑시트) 수단인 기업공개(IPO)가 막히면서 세컨더리(Secondary) 시장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해산을 앞둔 펀드들이 점점 쌓이자 시장의 수요에 따라 정책 금융기관에서 세컨더리 펀드 출자사업을 활성화하면서 관련 분야가 호황기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해외 세컨더리 시장만큼 국내 중간회수 시장을 계속해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딜사이트가 벤처투자회사 전자공시(DIVA)를 집계한 결과, 올해 1~12월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는 총 249개다. 규모는 5조9000억원에 달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펀드 결성 이후 운용기간을 7.5년 정도로 추정하면 2023년부터 5년간 20조원 이상 규모의 펀드가 만기에 도래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말했다.
고금리 등에 따른 경기 불황과 기술특례평가 상장 심사가 까다로워진 영향으로 회수시장이 악화하자 정부는 해결방안 중 하나로 세컨더리 펀드를 앞세우고 있다. 한국벤처투자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소관 모태펀드 2차 정시 출자사업에서 10년 만에 일반 세컨더리 분야를 부활시켰다. 중소형 부문에 ▲라구나인베스트먼트 ▲삼호그린인베스트먼트 ▲얼머스인베스트먼트, 대형 부문에서 ▲신한벤처투자 등을 선정해 총 500억원을 출자했다.
중기부는 지난해 12월 세컨더리 펀드의 신주 의무투자 규정(신주에 20% 이상 의무적으로 투자)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벤처투자법 시행령을 신설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출자사업은 대부분 정책 금융기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최근 세컨더리 펀드의 규모나 개수가 많아진 것은 정책 기조가 달라진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앞선 관계자는 "과거 정부는 세컨더리 펀드를 사회적 기여보다는 수익 추구의 목적이 강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근 몇 년 동안 정책 금융기관의 세컨더리 펀드 출자사업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최근 들어 청산 과정이 순탄치 않고 자금 회전율이 낮아지자 정부에서 업계의 조언과 제언을 받아들였다"며 "지난해부터 세컨더리 펀드 관련 출자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하 한국성장금융)은 회수 시장을 촉진하기 위해 유한책임출자자(LP) 지분 유동화 세컨더리를 직접 투자·운용하고 있다. 2022년 2월 405억원 규모의 'K-Growth 세컨더리 일반 사모투자신탁 제1호'를 결성한 데 이어 올초 'K-Growth 세컨더리 일반 사모투자신탁 제2호'(400억원)를 조성했다. LP 지분 유동화 세컨더리 펀드는 포트폴리오 단위로 지분을 매입하는 일반 세컨더리 펀드와 달리 특정 LP의 지분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산업은행도 지난해 '정책지원펀드' 출자사업에서 세컨더리 분야 대형 부문에 ▲DSC인베스트먼트 등을, 중형 부문에 ▲신한벤처투자 ▲IMM인베스트먼트 등을 선정해 총 1200억원을 배분했다.
다만 한국의 세컨더리 시장은 해외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활성도가 낮다는 평가다. 현재 DIVA에 등록된 벤처투자조합 1969개 가운데 세컨더리를 목적으로 하는 펀드는 181개(8.13%)로 규모는 총 2조9000억원이다. 반면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 벤처투자시장에서 세컨더리 투자 비중 추정치는 무려 24%에 달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세컨더리 시장의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VC 관계자는 "해외는 인수합병(M&A)을 통해, 한국은 IPO를 통해 엑시트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각자의 엑시트 수단으로 소화하지 못한 물량은 세컨더리 시장에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세컨더리 펀드 거래가 발달한 해외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국내 세컨더리 시장의 규모가 지금보다 3~4배 수준으로 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주도로 세컨더리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투자자들의 구주 거래도 적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메타인베스트먼트는 2023년 7월 구성한 '메타 세컨더리 제이호 사모투자합자회사'(500억원)를 결성 1년 만에, 신한벤처투자는 2022년 5월 등록한 '신한벤처 투모로우 투자조합 2호'(303억5000만원)를 결성 2년 만에 투자 활동을 마무리했다. 세컨더리 펀드의 결성 이후 투자금 소진 기간이 보통 3~4년인 점을 감안하면 투자 속도가 굉장히 빠른 셈이다. DSC인베스트먼트가 지난해 12월 결성한 '디에스씨세컨더리패키지인수펀드제1호'(3000억원)도 오는 9월 펀드 소진율 20%를 기록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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