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벤처캐피탈(VC)의 투자금 운용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만기가 임박해 투자금 회수가 절실한 펀드는 쌓여가는데 시장 침체로 기업공개(IPO)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VC들에게 펀드의 지분이나 포트폴리오 구주를 인수해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이른바 '세컨더리 펀드'가 단비가 되고 있다. 시장의 주목을 받으면서 투자금 소진 속도가 1년 내외로 빨라질 정도다. 딜사이트는 최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세컨더리 시장의 현황을 알아보고 업계에서 구사하는 전략과 한계점을 살펴본다.

[딜사이트 한은비 기자] 신한벤처투자는 네오플럭스 시절인 2002년부터 신한금융지주 계열사로 자리한 지금까지 꾸준히 세컨더리 펀드를 만들었다. 국내 벤처캐피탈(VC) 최초로 세컨더리 펀드를 도입해 총 5차례의 관련 펀드 운용 경험을 갖고 있어 중간회수 시장의 강자로 꼽힌다. 현재 운용중인 벤처투자조합 16개 가운데 세컨더리 성격의 펀드도 4개에 달한다.
회사는 구주 매입, 신주 취득을 동반한 구주 인수, 유한책임투자자(LP) 지분 유동화 등 세컨더리 펀드 다각화를 통해 시기별로 변화하는 시장 수요에 적극 대응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신한벤처투자는 2002년 12월 국내 1호 세컨더리 펀드 '프리코스닥유동화펀드'(500억원)를 결성했다. 이 펀드는 정통 세컨더리 펀드로 3년 동안 운용자금 70%를 구주에 투자했다. 2007년 순내부수익률(Net IRR) 19%를 기록하며 청산했다. 이후 신한벤처투자는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세컨더리 펀드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2016년 12월 만든 '네오플럭스 Market-Frontier 세컨더리펀드'(760억원)와 2021년 1월 구성한 '신한-네오 Market-Frontier 투자조합 2호'(1000억원)가 대표적이다. 두 펀드 모두 이동현 대표가 대표펀드매니저를 맡고 있다. 네오플럭스 Market-Frontier 세컨더리펀드는 LP 지분 유동화 방식으로, 신한-네오 Market-Frontier 투자조합 2호는 구주 매입에 더해 신주 투자, LP 지분 유동화 등을 혼합한 하이브리드(hybrid) 성격으로 운용됐다.
신한벤처투자 관계자는 "타 VC가 보유한 포트폴리오를 매입하는 일반적인 세컨더리 형태만 생각하면 중간회수 시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벤처투자업계에서 구주를 매입하는 일반 세컨더리 펀드만 성행하면 빠른 회수를 위해 상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만 투자금이 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LP지분 유동화 세컨더리 펀드는 구주 거래 위주의 일반 세컨더리 펀드와 달리 펀드 출자자들의 지분을 매입한다. 지분 자체를 매입 대상으로 하기에 우수 포트폴리오사뿐 아니라 실적이 잠시 악화한 기업도 후속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앞선 관계자는 "중간회수 시장을 지속적으로 활성화하려면 세컨더리 펀드의 성격을 다양화해야 한다"면서 "시기에 따라 세컨더리 펀드를 달리 운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 여러 성격의 세컨더리 펀드를 보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VC, 벤처기업, LP마다 시기별로 세컨더리 펀드에 기대하는 역할이 다르다"면서 "세컨더리 펀드의 타깃을 누구로 설정해 운용할 것인가에 따라 시장의 수요 대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한벤처투자가 2022년 5월 결성한 '신한벤처 투모로우 투자조합 2호'(303억5000만원)는 개인투자자 다수가 출자자로 참여한 세컨더리 펀드다. 개인투자자 참여에 따른 빠른 자금 회수 수요를 고려해 펀드 운용 기간은 일반 벤처펀드 운용 기간에 비해 짧은 5년으로 정했다.
해당 펀드의 대표펀드매니저인 현종윤 상무는 투자와 회수까지의 기간이 비교적 짧은 만큼 회전율이 빠른 선도 기업 위주로 투자하는 전략을 택했다. 해당 펀드의 투자금은 지난 5월 전부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세컨더리 펀드가 투자금을 전부 소진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3~4년인 점을 감안하면 빠른 속도라는 평가다.
회사의 세컨더리 펀드 운용 전략은 현재도 유효하다. 신한벤처투자는 지난 5월 1000억원 규모의 '신한 Market-Frontier 투자조합 3호'를 결성했다. 해당 펀드는 회사가 지난해 7월 '한국모태펀드 2023년 2차 정시 출자사업(중소벤처기업부 소관)'에서 중진계정 일반 세컨더리 대형 분야 위탁운용사(GP)로 선정돼 조성한 펀드다. 대표펀드매니저에는 현종윤 상무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회사는 구주 취득과 함께 해당 기업이 신규로 발행하는 주식을 사들일 때도 주목적 투자로 인정해주는 조항을 활용해 구주와 신주 투자를 적극 병행할 예정이다. 모태펀드 출자사업 일반 세컨더리 부문의 경우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구주 등을 인수하는 데 약정총액의 60%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신한벤처투자 관계자는 "신생 기업들이 한창 성장할 때는 구주 매매 기회만 노릴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신규 투자도 해줘야 한다"면서 "피투자기업은 기존 주주들에게 투자금 회수(엑시트)의 길을 열어주는 동시에 새로운 투자 유치를 통해 자금을 마련해야 할 때 세컨더리 펀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반면 회사들의 성장세가 밝지 않으면 VC들은 일반 구주 매입에 주력하는 세컨더리 펀드를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 관계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세컨더리 펀드를 요령 있게 구사하다 보면 중간회수 시장은 계속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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