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전한울 기자] SK가 최근 반도체 소재 자회사인 SK실트론을 매각 리스트에 올리면서 수년간 이어진 '반도체 내재화'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SK실트론이 국내서 유일하게 반도체 웨이퍼를 제조하면서 SK하이닉스 공급망 안정화 및 실적 성장에 기여해 온 점을 고려하면 산업·사업적 과도기에 접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SK가 최근 4~5년 동안 반도체 다운 사이클을 겪은 만큼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다각 작업에 본격 착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이 회사가 에너지·환경 사업부문에 한층 힘을 실은 점을 고려하면 포트폴리오 비중을 골고루 분산시켜 나갈 것이란 게 시장의 시각이다.
SK그룹은 과거 반도체 업사이클에 따라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포트폴리오를 수직 계열화하면서 사업·실적 시너지를 극대화했다. 2012년 SK하이닉스를 인수한 뒤로 반도체 소재 및 부품 사업을 속속 내재화하면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그 일환으로 2016년 반도체 소재 기업인 SK머티리얼즈를, 2017년 SK실트론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수직 계열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에 따른 재무부담이 늘고 반도체 사이클 변동에 따른 실적 둔화 폭도 커지면서 사업 비중을 점진적으로 분산해 나가기 시작했다. SK는 최근 반도체 모듈 재가공 업체인 에센코어와 반도체용 산업가스 제조사인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를 SK에코플랜트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등 반도체 부문 일부서 경영 효율화에 나섰다. 이와 동시에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총 자산 100조원 규모의 에너지 기업을 정조준 한다. 이번 재편 작업이 마무리되면 SK그룹의 SK이노베이션, SK에코플랜트 지분율은 각각 20% 포인트 이상씩 늘어나게 된다. 신(新)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에너지·환경 부문 지분을 대폭 확대해 관련 실적 기여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앞서 2023년에는 SKC의 반도체 소재사업 투자사인 SK엔펄스가 반도체 전공정 기초소재 및 세정 사업을 매각했다. 당시 SK엔펄스는 '고부가 소재·부품 사업에 집중하기 위함'이란 입장을 밝혔지만, 이번 SK실트론 매각이 성사된다면 앞서 표명한 입장은 일부 성립되지 않는다. 그동안 반도체 수직 계열화를 이끌었던 주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 역량을 내재화하겠다는 전략은 사실상 무산될 것이란 게 시장의 시각이다. SK실트론은 반도체 핵심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를 국내서 유일하게 제조하는 업체다. 글로벌 시장서도 12인치 웨이퍼 기준 3위 안에 들면서 과점 체제를 유지 중이다. 이러한 시장·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SK하이닉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도 거래 관계를 구축하며 안정적인 수급망을 확보했다. SK실트론이 SK를 넘어 국내 반도체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이에 일각에선 SK가 SK실트론을 실제 매각할 시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저하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SK하이닉스 웨이퍼 매입액 중 SK실트론 제품 비중은 50%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글로벌 웨이퍼 시장을 5개 업체가 과점 중인 점을 고려하면 한층 불리한 거래 조건이 형성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가운데 SK 주가는 최근 보름간 12만원대에서 횡보 중이다. 기업가치 제고가 시급한 상황 속 돈 잘버는 손자회사의 경쟁력 둔화가 뼈 아픈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유력한 인수 후보자인 한앤컴퍼니가 생산설비 등을 유지하기로 한다면 파장이 덜하겠지만 사모펀드인 만큼 단기수익을 노려볼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며 "실트론이 과점 시장서 경쟁력이 높은 알짜 매물로 꼽히는 만큼 이를 통해 수익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럴 경우 국내 핵심소재 기술, 생산에 공백이 불가피해지고 SK하이닉스는 글로벌 의존도가 크게 늘어날 것"며 "최근 국제 정세가 한층 불안정해진 만큼 공급망이 흔들리고 원가가 상승하며 가격 경쟁력이 둔화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관계자는 "SK실트론은 지분관계 없이 웨이퍼를 구매하는 거래처 중 하나"라며 "웨이퍼는 통상 3~4개의 거래처를 두고 시황과 정세에 따라 조율해 온 만큼 기본 사업기조와 수급환경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SK는 SK실트론 매각 여부와 관계 없이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포트폴리오가 앞으로도 건실히 운영될 것이란 입장이다. SK 관계자는 "현재 SK실트론은 매각 가능성을 검토 중인 수준"이라며 "실트론 매각이 확정된다고 해도 SK하이닉스가 건재한 이상 앞으로도 반도체 중심 포트폴리오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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