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국내 유일의 원양 컨테이너선사인 HMM이 변칙적인 호황기를 맞은 가운데 지난해 실적에 대한 결산 배당 규모에 관심이 쏠린다.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이 30%에 근접한 만큼 고배당을 실시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돼서다.
HMM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지수 종목으로 편입됐다는 점은 배당 확대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요인이다. 현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주주가치 제고 노력이 불가피하다.
◆ 예상 못한 '깜짝 호황'…매출 대비 가파른 이익 증가세
1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HMM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1조3429억원, 영업이익 3조2195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5% 성장하고, 영업이익은 450.5%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순이익은 274.9% 불어난 3조6313억원으로 예상된다.
HMM는 지난해 3분기에 전년도 실적을 초과한 데다, 4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깜작 실적)를 달성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사는 지난해 3분기 말 누적 기준 매출 8조5453억원, 영업이익 2조5127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연매출 8조4010억원과 영업이익 5848억원보다 각각 1.7%, 329.7% 웃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1월부터 유럽과 지중해 항로를 중심으로 컨테이너운임이 강세를 보인 점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시장에서는 HMM의 이 같은 실적을 놓고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해운업은 10~20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극단적인 진폭을 그린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발발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이미 시작된 해운업 다운사이클이 더욱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전 세계적인 경제 침체 위기로 글로벌 선사들이 물동량 감소를 우려하며 노선과 선복량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물동량 증가에 따른 수급 불균형과 글로벌 물류 대란, 항만 적체 등이 맞물리면서 해상운임은 급등했고, HMM을 비롯한 해운사들은 '반짝 특수'를 누렸다. 그 결과 HMM은 2022년 연간 기준 매출 18조5828억원과 영업이익 9조9494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해상운임은 2023년 들어 안정화되기 시작했고, 공급 과잉에 따른 불황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해운업황은 또다시 예측을 빗나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홍해 사태, 중국발 이커머스 물량 확대 영향 등으로 컨테이너선 운임이 고공행진을 이어간 것이다. 예컨대 해상운임 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평균 2506포인트(p)로 나타났다. 해운업 호황기가 절정이던 2021년 3769p와 2022년 3410p와 비교하면 약 30% 하락한 수치지만, 전년(1006p) 대비로는 149% 상승했다.
◆ 주가 저평가·밸류업 지수 편입 등 고배당 가능성…일각선 투자 강화 무게
이렇다 보니 HMM이 지난해 실적에 대한 결산 배당금을 증액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익의 순도가 높아진 만큼 배당으로 지급할 수 있는 실탄을 더 많아 쌓았기 때문이다. HMM은 배당 재원이 되는 이익잉여금을 대거 축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컨센서스를 기준으로 따져볼 때 HMM의 영업이익률과 순이익율은 각각 28.4%, 32%다. 이익잉여금도 2023년 말 10조8891억원에서 지난해 말 약 14조원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 계산으로 HMM의 지난해 순이익에 2023년 결산 배당성향 49.8%를 대입하면 주당 배당금은 2000원, 총 1조8000억원 규모다. 지난 3년간의 평균 배당성향(20.4%)으로 산출하면 주당 840원, 총 7408억원이다.
HMM이 대표적인 저평가주로 주식시장에서 소외 받고 있다는 점은 주주환원 강화의 필요성을 높인다. 실제로 HMM의 지난해 추정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각각 3.5배, 0.5배다. PER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며 PBR은 시가총액을 자본총계로 나눈 값이다. 일반적으로 PER은 10배 미만, PBR은 1배 미만일 경우 저평가된 것으로 본다. 같은 기간 글로벌 1위 해운사 덴마크 머스크의 추정 PER가 12.5배이고, 중국 최대 해운사 코스코의 PBR이 1.4배라는 점과 비교하더라도 차이가 크다.

HMM이 지난해 9월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편입됐다는 점 역시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밸류업 지수는 기업가치가 우수한 기업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HMM은 자발적인 노력보다는 산업은행(산은)이 보유한 보통주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해당 지수에 포함됐다. 하지만 해당 지수에 편입된 만큼 의무적으로 주주가치 확대와 주가 부양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HMM이 배당 정책에 변화를 주는 대신, 투자 활동을 대폭 늘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영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만큼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HMM은 지난해 9월 오는 2030년까지 총 23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중장기 전략을 밝힌 바 있다. 선대를 확장해 주력인 컨테이너선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비주력 사업인 벌크 사업을 강화해 통합 물류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당초 HMM이 연말까지 발표할 것으로 예상됐던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 중인 것도 투자 강화 행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HMM은 지난 12월 "내부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검토 중이지만, 아직 정해진 내용이 없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해운업 한 관계자는 "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HMM 대주주로 있는 만큼 증권가를 중심으로 배당이 확대될 것이라는 장밋빛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며 "하지만 HMM은 대주주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배당을 늘리고 싶다고 늘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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