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노연경 기자] 정치는 메시지 싸움이다. 선거 캠프가 꾸려지면 유명 CF, 영화 감독들이 안팎으로 조력하는 이유도 정치의 승패가 곧 메시지로 결정 나기 때문에다. 기업회생에 들어간 홈플러스는 정치권의 총공격을 받고 있다. 근로자가 2만명에 달하는 홈플러스가 무너지면 이곳에 딸린 인력은 물론, 갑자기 납품처를 잃게 되는 제조 대기업도 휘청인다. 화살은 이 사태를 일으킨 홈플러스와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에게 돌아갔다. 정치권과 여론의 총공세에서 홈플러스가 던진 메시지는 '근로자', '소상공인'이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신청 이후 처음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2018년 1만3000명의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직원 한 명도 내보내지 않고 견뎠다"며 "이 기간 재난지원금 혜택도 대형마트는 받을 수 없어서 손실이 쌓으며 현 상태가 됐다"고 강조했다.
경쟁사와 달리 고용 인원을 전부 정규직으로 두고 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력 구조조정 없이 버텼다는 말이다. 홈플러스가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고용자를 책임지는 회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구조조정 없이 버틴 결정이 현명했는지에 대해선 따져봐야 할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코로나19)로 인해 힘들었던 건 홈플러스뿐만이 아니다. 롯데마트는 2021년에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했고, 2023년에도 한 차례 더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이마트는 작년 첫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롯데마트와 이마트가 희망퇴직을 진행한 건 고용자들을 배신한 게 아니다. 회사가 지속되려면 어쩔 수 없이 비용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비용 효율화를 통해 롯데마트와 이마트는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길렀다. 그 결과 롯데마트는 2023년 2014년 이후 10년 만의 최대 흑자를 냈고, 이마트는 작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적절한 보상을 통해 인력 구조조정을 하면서 수익 구조를 만든 것이다.
홈플러스는 회생채권 변제 과정에서도 소상공인, 영세업자를 최우선 순위에 두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세업자를 먼저 챙기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회생신청 나흘 만에 회생법원으로부터 3457억원 규모의 회생채권 조기 변제 허가를 받았다. 변제 허가를 받은 대금은 소규모 협력 업체에 대한 물품·용역 대금이다.
대기업에게는 '양보'와 '이해'를 바랐다. 소상공인, 영세업자에 대한 채권을 우선 변제한 뒤 대기업 채권은 회생계회안을 제출하는 6월부터 변제하겠다고 했다. 홈플러스가 '이해'와 '양보'를 바란 금액은 수백억원에 달한다. 롯데웰푸드는 홈플러스로부터 작년 분기 평균 영업이익의 26%에 달하는 102억원의 대금을 받지 못했다.
온정에 기대기엔 대기업 협력사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 부담도 큰 것이다. 이에 우유업계 1위인 서울우유는 대금 지급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지난달 20일부터 홈플러스에 상품을 납품하지 않기로 했다. 온정에 기대된 홈플러스는 서울우유를 맹비난했다. 법원에 묶인 대금을 제외하면 이후 거래한 물품에 대해선 빠짐없이 대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선 넘는 현금 선납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서울우유 조합원은 1400명에 달한다. 홈플러스에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처럼 서울우유도 이해관계자의 피해를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홈플러스는 서울우유에 대해 '업계 내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 협력사'임에도 소상공인부터 변제하겠다는 자사의 계획에 협력해주지 않았다며 노골적으로 이분법적인 주장을 드러냈다.
근로자와 소상공인을 강조하며 홈플러스가 결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가장 약한 사람들을 먼저 챙기고 있다'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태의 본질과 책임은 홈플러스에 있다. 법정관리로 가야 할 만큼 홈플러스가 경영과 유동성 관리를 잘 못했다는 것이다. 경영 실패에 대해 인정하고 뉘우치는 홈플러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홈플러스는 경영 악화의 탓을 코로나와 이커머스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찾았다. 기업회생은 '갑작스런' 신용등급 하락 때문이라고 했다.
메시지는 정치인뿐 아니라 기업에게도 중요하다. 기업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냐에 따라 그 기업의 이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홈플러스와 같은 소비재를 취급하는 유통기업의 경우 더 그렇다. 홈플러스가 이번 사태에서 내놓은 메시지에는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바로 '진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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