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범(汎)현대가인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이 오너 3세 승계 작업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핵심 계열사인 현대코퍼레이션이 자동차 부품사 인수·합병(M&A)을 공식화한 데다, 정몽혁 회장의 세 자녀들이 3년 만에 지주사 주식 매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이 트레이딩(무역) 사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는 약점이 있는 만큼 신사업을 통한 영역 확장으로 3세 경영을 준비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오너 3세의 지분 확대는 그룹 내 영향력 강화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다.
◆ 국내 車부품사 인수 MOU…신기인터모빌 등 M&A 의지 '강력'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코퍼레이션은 지난 4일 국내 소재 자동차부품 회사 지분을 인수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구체적인 계약 상대나 예상 인수가액 등은 비밀유지조항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현대코퍼레이션으로 피인수되는 기업의 몸값은 최소 164억원 이상으로 파악된다. 상장사 규정에 따라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대기업의 경우 자기자본의 2.5% 이상에 해당하는 타법인 주식을 취득할 때 무조건 공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코퍼레이션은 지난해 기준 총 자산이 2조623억원을 기록했으며, 자기자본(자본총계)은 6553억원이었다.
업계에서는 현대코퍼레이션의 자동차 부품사 M&A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게 주된 반응이다. 1976년 현대종합상사로 출범한 현대코퍼레이션은 범현대가 일감을 받아 사세를 키워왔다. 하지만 중개무역에서 챙기는 수수료만으로는 성장 한계가 존재했고 대외 민감도가 높았다. 이에 2021년 지금의 사명으로 변경하며 매출 구조 다변화에 나섰다.

정 회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신사업은 안정적인 일감 확보가 가능한 제조업이었다. 특히 자동차 부품업에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정 회장은 2021년 신기인터모빌 M&A전에 뛰어들며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차량용 플라스틱 부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신기인터모빌은 현대자동차·기아를 주요 고객사로 둔 알짜 회사였지만, 해당 M&A는 가격 협상 과정에서 무산됐다.
주목할 부분은 현대코퍼레이션이 자동차 부품 사업에 재진출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벌여왔다는 점이다. 예컨대 현대코퍼레이션은 지난해 1월 현대차에서 부품개발·구매업무를 수행한 김원식 상무를 승용부품본부 사업개발 전문위원으로 합류시켰다. 최근에는 김 상무의 직책을 전문위원에서 상무로 변경하며 존재감을 한층 높였다.
현대코퍼레이션의 자동차 부품업 진출은 오너 3세 승계와도 맞물려 있다. 60대 중반(1961년생)인 정 회장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은 것으로 보이지만, 후계 구도의 얼개를 미리 마련한다는 차원에서다.
◆ 매출 다변화 필수, 승계 밑그림 연관…절묘한 오너3세 주식매수 타이밍
정 회장은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먼저 장녀인 정현이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 대표는 1988년생이며, 장남인 정두선 현대코퍼레이션 부사장은 1990년생이다. 막내아들인 정우선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 과장은 1997년으로 아직 20대다.
표면적으로 장녀인 정 대표는 동생들에 비해 대권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는 조명기구 제작업체로 정 회장 일가의 개인 회사다. 반면 정 부사장은 정통 후계자의 길을 걷고 있다. 2014년 현대코퍼레이션 법무팀 차장으로 입사한 뒤 2019년 상무보로 임원 반열에 올랐으며 ▲2021년 상무 ▲2022년 전무 ▲2024년 부사장 순으로 고속 승진했다.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현대코퍼레이션 벙커링 사업을 전담하는 현대퓨얼스의 법인장을 맡고 있다. 정 과장은 2022년 지주사로 입사해 신사업본부에 몸담고 있다.
업계는 정 회장이 두 아들에게 경영권을 나눠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하지만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은 사업이 비교적 단조롭고, 트레이딩 사업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실제로 현대코퍼레이션의 주력 사업은 ▲철강 ▲승용 ▲에너지상용부품 ▲기계인프라 ▲석유화학 등 트레이딩이며, 전체 매출의 98% 이상을 차지한다. 이 회사는 자원개발과 물류 등 기타사업도 영위 중이지만, 매출 비중은 2%에도 못 미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 회장이 자동차 부품사 M&A를 거쳐 지배구조를 재정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앞서 현대코퍼레이션은 2023년 일본 자동차 내장재 업체인 스기하라와 함께 인도네시아에 '스기하라현대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2021년에는 러시아에서 국내 업체와 조인트벤처(JV) 부품사 '에이치와이오토솔루션'을 설립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유의미한 성과는 없는 상태다. 만약 현재 추진하는 국내 부품사를 마무리하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현대코퍼레이션그룹 오너 3세들이 약 3년 만에 지주사 주식을 사들였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세부적으로 ▲정 대표 2만4863주 ▲정 부사장 2만1414주 ▲정 과장 2만4169주를 각각 장내 매수했으며, 총 매입 단가는 7억8000만원이다. 그 결과 오너 3세의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 지분율은 장녀가 1.05%, 장남과 차남은 각각 0.77%, 0.59%다.
오너 3세들의 지분 확대는 자연스러운 지배력 강화 작업으로 풀이된다.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이 될 뿐 아니라 오너가로서 책임 경영 의지를 나타낼 수 있어서다. 더군다나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 최대주주인 정 회장(지분율 23.62%)의 용퇴 시점이 멀었다는 점에서 점진적으로 보유 주식을 늘려가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현대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이번 MOU와 관련해 비밀유지계약에 따라 자세한 내용은 언급할 수 없지만, 그동안 꾸준히 자동차 부품사 M&A를 추진한 결과"라며 "오너일가의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 주식 매입 배경은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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