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이 최근 사피온의 제품군을 모두 정리했다. 사피온과의 합병 전 자사 주력 신경망처리장치(NPU) '아톰·리벨'의 개발과 양산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리벨리온은 X220, X330 등 사피온의 NPU 제품군 개발 중단을 결정했다. 사피온의 공식 홈페이지도 내렸으며, 기존 주소를 입력하면 리벨리온 홈페이지로 리다이렉션된다. 사피온의 X 시리즈 개발에 관여했던 인력 대부분은 리벨리온의 주력 NPU인 아톰과 리벨로 이동했다. 합병 전 별도로 개발해왔던 양사 제품군을 리벨리온 제품으로 단일화한 셈이다.
이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한 지붕 아래 각자의 제품 경쟁력을 키우는 이원화 방식도 가능하지만 NPU 시장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데다 투입할 자원마저 한정적이라는 점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NPU 개발과 양산에는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합병 과정에서 리벨리온으로 회사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당시 업계에서는 사피온 제품의 개발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앞서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는 지난해 12월 합병 절차를 완료, 리벨리온이라는 사명의 합병법인을 공식 출범시켰다. 이후 리벨리온은 인수후통합(PMI) 작업에 집중해왔다. 회사 관계자는 "(사피온 제품 개발 중단은) 합병이라는 큰 흐름을 구성원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X 시리즈 개발 인력 상당수는 현재 아톰과 리벨 등 NPU 개발과 고객지원 등에 배치됐다"고 말했다.
리벨리온의 주요 NPU는 아톰, 아톰 맥스, 리벨 등 세 가지다. 소규모 데이터센터용 아톰은 지난 2023년 11월 출시됐다. 아톰의 성능을 4배 끌어올린 아톰 맥스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용으로 개발됐으며, 이르면 이달 중순 출시될 전망이다. 이들 모두 삼성전자 파운드리 5나노(㎚) 공정에서 제조된다. 칩이 아닌 카드 형태의 아톰은 작년 양산 물량이 완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리벨은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지원하는 차세대 AI 반도체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을 목표로 하며, 삼성 파운드리 4나노 공정에서 첫 샘플 생산을 계획 중이다.
리벨리온과 삼성 파운드리 간 협력 관계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앞서 리벨리온과 사피온 간 합병 과정에서 리벨리온이 삼성전자와 TSMC로 생산 이원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SK그룹이 사피온의 사실상 모회사라는 이유에서다. SK하이닉스가 TSMC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리벨리온과 삼성 간 기존 협력 기류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리벨리온은 현재 리벨에 삼성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탑재하고 있고, 앞으로 리벨 중심의 라인업 확장까지 계획 중인 만큼 TSMC보다는 삼성과 끈끈한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올해 리벨리온은 해외 AI 데이터센터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지난달에는 일본 도쿄에 첫 해외 법인을 설립했다. 일본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사업자(CSP), 통신사 등과 진행 중인 AI 반도체 도입 개념검증(PoC) 등의 사업 협력 기회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리벨리온은 연내 사우디아라비아에도 해외 법인을 세워 현지 사업 확장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아람코로부터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전략적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최근 아람코 데이터센터에 렉 기반 제품을 공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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