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노태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사장)이 디지털경험(DX)부문 전면에 섰다. 고(故) 한종희 부회장의 별세로 공석이 된 DX부문장 직무대행을 겸하게 되면서 스마트폰은 물론 TV와 생활가전까지 DX사업 전반을 실질적으로 총괄하게 됐다.
현재 DX부문은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에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강화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노 사장은 실적 방어와 위기 대응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짊어지게 됐다.
우선 DX부문은 지난해 기준 회사 전체 매출(300조8709억원) 가운데 58.1%에 달한다. 산하로는 스마트폰 담당 MX사업부, TV 담당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생활가전(DA)사업부, 네트워크사업부, 의료기기사업부 등을 두고 있다.
이 중에서도 노 사장이 맡은 MX사업부는 회사 핵심 축으로 꼽힌다. 반도체사업 담당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의 부진 속에서 전체 실적 방어선 역할을 하며 '효자' 노릇을 해왔다. 지난해 MX사업부의 매출은 114조4000억원으로, DX부문 매출의 65.4%를 차지했다.
문제는 DX부문 내 주요 사업부의 경쟁력이 예년만 못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은 2023년 30.1%에서 지난해 28.3%로 하락했다. 스마트폰은 2022년 21.7%를 기록한 이후 2023년엔 19.7%, 지난해는 18.3%까지 낮아졌다.
수익성을 가늠할 영업이익단에서도 정체를 나타냈다. 지난해 MX사업부(네트워크 포함) 영업이익은 10조6000억원으로 1년 새 2조4000억원 줄었고, VD·DA사업부는 1조7000억원으로 5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에 DX부문 영업이익도 1조9000억원 감소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100만원 이상 가격대의 프리미엄폰 분야에서는 '갤럭시S·Z'로 선전하고 있으나 중저가 분야에서는 가성비를 앞세운 오포와 샤오미, 비보 등 중국 제조사에 밀려 연간 점유율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가전 분야에서도 TCL과 하이센스, 하이얼 등 중국 대표 가전업체에 밀리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한국 가전을 모방하거나 가격을 낮춘 제품을 내놨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등을 탑재한 신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도 경쟁력 약화에 대한 문제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달 19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 부회장은 "지난해 스마트폰과 TV, 가전 등 주요 제품이 압도적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주가도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주주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외부 정책 변수도 삼성전자에 부담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관세뿐 아니라 보조금, 부가세, 환율 등 비관세 장벽까지 반영한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다. 캐나다와 멕시코산 수입품에 대한 25% 고율 관세도 조만간 유예가 풀릴 전망이다.
북미를 비롯한 미주 지역은 삼성전자의 핵심 매출처다. 최근 3년간 전체 매출의 30%가량이 꾸준히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움직임이 현실화하면 수출 비용 증가와 공급망 재조정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DX부문의 대미 수출을 위한 생산기지는 멕시코와 베트남에 집중돼 있다. 멕시코 케레타로·티후아나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베트남에서는 스마트폰을 생산해 미국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미국 내 현지 생산은 세탁기 등 일부 품목에 한정돼 있다.
대내외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노 사장의 DX부문장 직무대행 선임을 두고 조직 안정과 리더십 공백 최소화에 방점을 찍은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급격한 체질 개선보다는 기존 체계를 유지, 불확실성에 기민하게 대응하겠다는 삼성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노 사장이 TV·가전 분야에서 직접적인 경험이 부족해 DX부문 전체를 총괄하기에는 무게감이 다소 부족하다는 시선도 제기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인재 풀이 제한된 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최선의 카드였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노 사장은 '갤럭시' 시리즈 개발을 이끈 스마트폰 전문가이자 MX사업부를 핵심 사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가전·TV 부문에 대한 실무 경험은 부족하지만 DX부문의 실적 관리와 전략 수립을 담당할 총괄 역할 수행에는 충분한 경영 역량을 갖췄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노 사장이 지명되기 전까지는 외부 영입이냐, 내부 승계냐를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결국 예상된 인물이 전면에 나섰다"며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고 조직 안정을 택한 결정으로, 불확실성이 큰 시점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전면적인 세대교체를 밀어붙이기엔 부담이 있는 상황"이라며 "당장은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체제가 굳어질 수도 있고, 새로운 인물을 전진 배치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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