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국내 PE업계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홈플러스에 대한 법원의 기업회생 절차 신청으로 시작한 비난의 불씨가 PE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어서다.
특히 이번 사태가 차입매수(LBO) 방식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이 나와 더욱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도 금융위원장을 상대로 압박을 가하고 있어 PE업계는 전부 사색(死色)에 빠진 상황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비화하자 국내 PE들을 중심으로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이어져 글로벌 스탠다드와 맞지 않는 규제가 나오거나 레버리지 제한 등 조치가 이뤄지게 되면 국내 PE 시장은 순식간에 사장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게 되면 과거 IMF 시절 해외 PE들이 국내에 들어와 수십조원의 수익을 내고 '먹튀'했던 전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IMF 시절…글로벌PE, 느슨한 법망 뚫고 활개
국내 PE들은 현재 대기업 등 산업자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 금융자본으로 자리매김했다. 대기업이 잠시 유동성 위기에 빠졌을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것도 대규모 자금을 가진 국내 PE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넘겨받은 PE들은 어지러운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해 다시 산업에 넘기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같은 구조가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20년 전엔 국내에 PE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년 국내 PE가 태동하게 된 건 IMF 외환위기 시절 겪었던 악몽 때문이다. 지난 1997년 IMF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은 론스타, 뉴브리지캐피탈, 칼 아이칸 등 글로벌 PE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해외 PE는 도산 위기에 빠진 대기업들을 싼 값에 사들였다. 매물로 나온 기업들 대부분은 높은 현금창출력을 가졌지만 잠시 '돈맥경화'에 빠진 상태였다. 이를 알고 있었던 해외 PE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기업 사들이기에 집중했다.
가격도 입맛대로 재단했다. 부르는 게 값이었다. 해외 PE와 경쟁할 하우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내 자본시장법망이 허술하다는 것을 알고 대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헐값에 은행, 증권사 등 금융사들을 사들였다.
대표적으로 골드만삭스는 지난 1999년 국민은행, 진로그룹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당시 5억달러를 들여 국민은행 지분을 사들인 골드만삭스는 이후 매각을 통해 9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이어 디폴트 선언을 한 진로그룹의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였다. 당시 진로그룹 채권은 부실 딱지가 붙어 액면가의 10~20% 수준에 거래됐다. 2000년까지 골드만삭스가 매집한 것으로 추산되는 채권 규모는 3500억~4000억원 수준이다. 액면가로 치면 최소 2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채권을 충분히 매집한 골드만삭스는 진로그룹의 경영정상화 시도를 방해했고 차후 자산도 사들인 뒤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파산 후 매각에 들어간 진로그룹은 훗날 3조4288억원에 하이트맥주 품에 안겼다. 골드만삭스는 1조원대로 추정되는 차익을 남기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이외에도 영국의 리젠트그룹이 경수종금, 해동화재, 일은증권 등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수천억원의 수익을 올렸고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헐값에 집어삼킨 뒤 7년 만에 원금을 제외하고 4조70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 "국내PE 순기능 되새겨야…빈집되면 해외PE에 또 국부유출"
홈플러스 사태로 촉발된 비판 여론이 PE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일각에서는 PE 시장을 고사시키려는 움직임마저 보이자 PE업계에선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되새겨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은행 등 금융권과 함께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한 대형 PE 대표는 "PE들을 기업사냥꾼, 먹튀 자본 등으로 악마화해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움직임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이는 PE의 순기능을 모르고 하는 주장"이라며 "PE는 매물로 나온 기업을 사들여 경영을 효율화하고 밸류업을 통해 기업가치를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요즘과 같이 경기가 어려운 시절엔 PE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며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대기업이 계열사를 내놓으면 이를 받아 갈 만한 주체가 PE밖에 없다. PE는 해당 기업을 정상화한 뒤 다시 동종업계로 경영권을 넘기는 기업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PE 대표는 국내 PE들이 종국에는 국부유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IMF 당시 '기업사냥꾼'으로 맹위를 떨쳤던 글로벌 PE를 막아설 대항마는 국내 PE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외환위기 시절 해외 PE들은 '빈집'에 들어와 대한민국 경제를 휘젓고 다녔다. 그들을 제어할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지난 20년간의 노력으로 국내 PE들은 해외 자본을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을 갖췄다. 만약 큰 위기가 오더라도 우리 경제가 과거와 같이 해외PE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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