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경기 불황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반토막 난 LB세미콘이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 당초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해 대규모 설비 투자 및 인력 확보로 수요 대응 채비를 마쳤으나, 시장 회복이 지연되면서 예상보다 큰 비용 부담을 안게 됐기 때문이다. LB세미콘은 전사적 차원에서 수익성이 높은 '논-디스플레이구동칩(DDI) 사업' 확장에 사활을 건다는 계획이다.
업계에 따르면 LB세미콘은 현재 경기 불황으로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 지난 3개월 동안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회사 임원들의 급여를 20% 삭감하고, 직원들에게는 월 4일의 '무급 휴가'를 시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수장인 김남석 LB세미콘 대표도 미국, 대만, 중국 등 해외에 직접 나가 '발로 뛰는' 영업 활동을 펼칠 정도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이번 조치는 LB세미콘이 당초 경기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예상에 인건비를 늘렸으나 실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뒤늦게 비용 절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사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사업 부문 인력은 총 938명으로 전년 692명보다 35.54% 늘어났다. 이는 비정규직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인원도 포함된 수치다. 1인 평균 급여액인 4949만원으로 단순 계산하면 반도체 부문에서 급여로만 연간 464억원이 지출되는 셈이다.
여기에 시설 투자비와 전기세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특히 LB세미콘은 본사 맞은편에 있는 일진디스플레이 평택 공장을 530억원에 인수해 시스템온칩(SoC),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 신제품을 다루는 거점으로 활용하려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 주요 고객사들의 수요가 부진하자 공장 인수만 하고 내부 설계에는 아직 투자를 하지 않은 채 '셧다운'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이 공장을 매입하는 데 들어간 시설투자비와 전기세 등 운영비까지 더해져 비용이 많이 들었다. 특히 전기세는 거의 50% 이상 올랐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매출이 소폭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은 반토막이 났다. LB세미콘의 지난해 매출은 4508억원으로 전년(4168억원)보다 8.15%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188억원으로 전년(127억원)보다 48.15% 늘었다.
시설 투자와 인력 충원으로 고객사의 예비 수요에 대응할 채비를 마쳤으나 막상 시장 수요가 예상보다 저조하자 회사 내부적으로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LB세미콘 전체 매출의 60%를 넘을 정도로 비중이 큰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사업은 IT 제품 등 전방산업의 수요 부진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대표적인 사업이다. 주요 고객사인 LX세미콘부터가 DDI 의존도를 자체적으로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연쇄 타격이 불가피한 처지다.
다만 공장을 재매각하거나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회사 차원에서 DDI 비중을 줄이고 신사업인 '논-DDI' 부문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만큼 올해부터는 적자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기 때문이다.
앞선 관계자는 "회사 측에서는 일진디스플레이 공장에 대해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을 마련해 놓았다'고 보고 있다. 투자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는 모습"이라며 "인력도 섣불리 구조조정을 진행했다가는 예비 수요에 대응하지 못할까봐 일단 무급휴가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며 향후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남석 대표의 직접적인 영업 활동도 DDI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논-DDI 사업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LB세미콘의 논-DDI 사업은 크게 전력반도체, CMOS 이미지센서(CIS), 폐배터리 재생사업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을 골라보면 전력반도체로 좁혀진다. CIS와 폐배터리 재생사업은 시장 수요가 당장 회복되기 어려워 기대가 낮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CIS의 경우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채용되기 때문에 사업 확장이 어렵다. 현재 LB세미콘이 납품하는 전 제품의 최종 응용처만 놓고 보면 총 70%가 스마트폰에 쏠려 있는데, 최근 스마트폰의 교체 주기가 길어지면서 출하량이 지속 감소하는 실정이다.
폐배터리 재생사업은 최근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홀드'한 것으로 나타났다. LB세미콘은 지난 2023년 배터리 원료 재활용 기업인 '진성리텍'의 지분 60%를 120억원에 취득한 후, 사명을 'LB리텍'으로 변경한 뒤 폐배터리 재생 사업에 진출한 바 있다. LB세미콘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폐배터리 재생 사업의 내수 매출은 118억원으로 인수 원년인 전년(31억원)보다 4배가량 늘어났다.
업계 한 관계자는 "LB그룹이 원래 LG그룹에서 독립한 회사인 만큼, LB세미콘은 LG그룹과의 접촉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다. 이번 폐배터리 재생사업을 놓고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 방안을 모색할 정도였다"며 "그런데 최근 폐배터리 시장이 좋지 않아 투자 계획을 철회하고 사업을 전면 홀드한 상황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시작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전력반도체는 향후 '캐시카우'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신사업인 만큼 타 기업과 손잡고 불모지를 개척하는 모습이다. LB세미콘은 지난해 말부터 DB하이텍과 협력해 전력반도체용 금속 배선층인 RDL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B하이텍이 확보한 전력반도체 고객에게 LB세미콘이 패키징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인수합병을 결정한 자회사 LB루셈과 '턴키(Turn-key)' 전략을 통해 시너지를 더할 수 있다. LB루셈은 전력반도체 공정을 위한 ENIG(무전해 도금) 공정 설치와 타이코(TAIKO) 그라인딩 공정에 투자해왔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용 전력반도체 패키징 신규 프로젝트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국내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으로부터 수주한 AI 반도체 패키징 사업의 연장선으로 분석된다. 회사 한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는 전력을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전력반도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올해는 이 부문에서 매출이 크게 증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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