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한미반도체가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TC본더의 해외 매출 비중이 국내를 처음으로 앞지르면서 고객사 다변화에 성과를 거뒀다. 최근 최대고객사인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옛 한화정밀기계), ASMPT 등 TC본더 이원화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한미반도체가 TC본더 장비 경쟁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또 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MR-MUF) 방식에 이어 열압착 비전도성접착필름(TC-NCF) 타입의 TC본더에서도 매출 확대에 성공해 삼성전자 등 추가 고객사 확보의 길도 쉬워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는 2017년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용 TC 본더 출시 이후 지난해 4분기 처음으로 해외 매출 비중이 국내를 앞질렀다. 해외가 약 60%, 국내 약 40% 수준이다.한미반도체는 지난해 매출 5589억원, 영업이익 2554억원(연결 기준)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전년과 비교해 각각 251.5%, 638.7% 늘어난 수치다.
해외 매출의 경우 대부분은 마이크론이 담당하고 있다. 한미반도체의 모든 제조 장비는 인천 본사에 있는 6개 공장에서 만들어져 각 고객사에 배송된다. 대만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마이크론의 매출 확대와 영향이 있다. 실제 한미반도체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마이크론이 위치한 대만 매출이 크게 늘었다. 대만법인은 2016년 출범한 한미반도체의 첫 번째 해외법인이다.
출범 초기 2년(2016~2017년) 간은 평균 매출이 8억원에 불과했으나, 2018년부터 연평균 18%의 성장세를 기록한 덕에 2022년 120억원을 기록하며 6년 새 15배나 불리는데 성공했다. 2023년 반도체 다운턴 때는 매출이 47억원으로 줄어들었으나 지난해 3분기만에 전년 매출을 넘어서는 73억원까지 올라오면서 전년 동기 대비 102%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4월 마이크론은 한미반도체의 '듀얼 TC본더 타이거' 장비를 초도 물량으로 200억원대 공급 계약을 진행했다. 3분기부터 초도물량을 납품하기 시작한 뒤, 4분기에 추가 계약이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크게 늘어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마이크론은 2023년 8월 대만 디스플레이 제조사 AUO의 공장 두 곳을 약 3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대만 현지에 투자를 확대 중이다. 이를 통해 한미반도체의 대만 매출 증가세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마이크론이 HBM 생산 캐파(CAPA)를 확대하고 있어 한미반도체의 해외 매출은 더욱 증가할 예정이다. 마이크론은 앞서 2025 회계연도 CAPEX(자본적지출) 전망치로 140억달러(약 20조4200억원)를 제시했다. 이는 전년 대비 73% 가량 증가한 수치다.
현재 마이크론은 대만 공장에서 주로 HBM을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에 착공하는 싱가포르 HBM 전용 공장과 더불어 2026년 미국 아이다호주, 2027년 미국 뉴욕주와 일본 히로시마 공장에서 HBM 생산 시설을 가동할 예정이다. 공장이 예정대로 완공될 경우 HBM 생산 캐파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못지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씨티그룹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 마이크론이 올 연말 기준으로 HBM 점유율이 19%를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씨티는 올해 글로벌 HBM 시장이 402억달러(약 58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봤다. 이 중 마이크론은 HBM으로 올해 76억달러(약 11조원) 매출을 올려 전체 시장의 20% 가까이 점유율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마이크론이 한미반도체의 TC본더를 사용한 이후 HBM 안정성과 성능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한미반도체에게는 호재다. 삼성전자가 발열 등의 문제로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마이크론이 기회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D램 기술력에서도 마이크론이 삼성전자를 따라잡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5에 들어가는 모바일용 D램인 LPDDR5도 마이크론이 먼저 공급되면서 1차 공급사로 선정됐다.
한미반도체는 그동안 주력 고객사인 SK하이닉스에 TC본더를 독점 공급했지만 최근 한화세미텍 등 새로운 TC본더 협력사를 늘리기로 하면서 시장 장악력에 대한 도전을 받아왔다. 한화세미텍이 아직 TC본더 퀄테스트의 높은 벽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지만 SK하이닉스의 이원화 정책이 가속화되면서 한미반도체에게도 위기로 다가왔다.
하지만 해외 매출이 국내를 넘어서면서 추가적인 메모리 고객사를 확보, HBM용 장비 시장 내 입지를 다시금 확대하게 됐다는 평가다. 마이크론이 사용 중인 TC-NCF 타입의 TC본더는 평균판매단가(ASP)가 MR-MUF 방식 대비 높아 수익성도 높다.
삼성전자도 최근 한미반도체의 TC본더에 대한 문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추가 고객사 확보에 가능성도 커졌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올해 1분기 DS(반도체) 부문 실적이 전분기 대비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D램 기술력 확보가 부진한 상황에서 고민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이 HBM4 16단 양산을 위해 이르면 올해 말 TC본더 업체들에 대한 비딩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HBM4에서도 기존 MR-MUF 방식으로 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마이크론은 16단부터 코어 D램 적층 개수를 늘려줄 공법으로 플럭스리스(FLTC) 본딩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ASMPT 등 다양한 업체들이 비딩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미 HBM3E에서 한미반도체의 도움을 받은 마이크론의 경우 플럭스리스 본딩에서도 한미반도체 장비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HBM4부터는 사활을 걸어야하는 삼성전자 역시 한미반도체 장비 도입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반도체가 플렉스리스 본딩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는다면 매출과 수익성 확대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도 한미반도체의 목표주가를 15만원으로 제시했다. JP모건은 "최근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TC본더를 공급하려는 여러 기업이 있었지만 1년 이상의 시도 끝에 수주에 실패해 진입 장벽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한미반도체가 2027년까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점유율을 90% 이상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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