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제지업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재도약에 나서는 듯 했지만, 영업환경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원재료값과 전기료 등 고정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약화하고 있어서다. 특히 대부분의 제지사가 단일 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제지업계가 일부 상위권사를 제외하고는 자수성가형 오너일가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춰 경영에 대한 견제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딜사이트는 국내 상장 제지사들의 재무 현황과 지배구조, 추후 과제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골판지 업체인 신대양제지의 이익 성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원자재값 인상으로 매출원가 부담이 가중된 상황에서 비용 통제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신대양제지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골판지 사업에 편중된 터라 이익 체력을 보강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신대양제지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신사업 구상을 그리지 않고 있다는 점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신대양제지는 올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 3220억원과 영업이익 21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할 때 매출은 0.3%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41.3% 감소했다. 순이익은 12.9% 줄어든 284억원으로 나타났으며, 수익성 지표인 EBITDA(상각전 영업이익)는 30% 가까이 하락하면서 EBTIDA 마진율도 4.5%포인트(p) 빠졌다.
◆ 원재료 폐지 가격 급등…판관비 통제 실패 영향
신대양제지의 외형과 수익성에 괴리가 발생한 주된 요인으로는 비우호적인 영업환경과 각종 비용 증가를 꼽을 수 있다. 골판지는 폐지를 핵심 원재료로 활용해 원지를 만들고, 원지는 여러 겹으로 쌓은 원단이 된다. 이후 원단으로 골판지 상자 완제품이 제작된다. 신대양제지는 골판지 원지 부문과 골판지 상자 부문을 영위 중이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원지가 40.3%, 상자가 59.7%로 비슷한 수준이다.
문제는 골판지를 만드는 원재료인 폐지 가격이 급격히 인상했다는 점이다. 특히 신대양제지의 경우 원지를 활용해 상자까지 제조하는 만큼 폐지 가격에 따라 전반적인 실적이 좌우된다.

실제로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 9월 국내 폐지(폐골판지) 가격은 kg당 111.6원으로 전월 대비 4.5% 올랐다. 지난해 9월(73.7원)보다는 무려 51.4% 비싸진 금액이다. 수입산 폐지의 경우도 전년보다 19.1% 늘어난 톤당 208.6달러(8월 기준)로 집계됐다. 여기에 더해 공장을 가동하는데 필요한 전기세도 지난해 11월 kWh(킬로와트시)당 평균 10.6원 올랐고, 올해 실적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그 결과 신대양제지의 상반기 매출원가는 5.3% 증가한 2643억원이었으며, 매출원가율은 3.9%p 상승한 82.1%였다. 매출이 소폭 늘었음에도 원가 부담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신대양제지는 매출총이익이 위축된 상황에서 판매비와관리비(판관비)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올 상반기 말 판관비가 전년 동기보다 7.7% 증가한 366억원을 기록했는데, 수출제비용과 대손상각비 지출이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수출제비용은 수출시 필요한 포장과 운반, 보관, 선적비, 해상운임 등의 비용이 반영되는 계정으로, 무려 24배 확대된 2억8000억원 가량을 썼다. 대손상각비로는 44.5배 늘어난 4억7000만원이 빠져나갔다. 매출채권의 회수 불투명 등을 이유로 충당금을 계상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부분은 수출용 원지의 판매 가격이 지난해 말 톤당 51만원 선에서 올 상반기 말 35만원 30% 선으로 31% 인하됐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국내용 원지 가격은 4% 낮아지는데 그쳤다. 수출 물량이 많아질수록 비용 부담은 가중되는데 오히려 수익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 사업 포트폴리오 단순화, 외부 대응력 취약…"신사업 계획 없어"
신대양제지가 골판지 관련 단일 사업구조를 구축한 점은 오히려 독이 되는 모습이다. 국내 골판지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 데다, 대외적인 리스크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제지협회에 따르면 국내 제지사의 골판지 원지 생산량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정점을 찍은 뒤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원지 생산량은 연평균 3.8%씩 성장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급부상한 2020년 생산량은 8.9% 늘었고, 2021년에는 역대 최대인 598만톤을 기록했다. 하지만 엔데믹으로 전환한 2022년부터 판매량이 연평균 4.5%씩 줄기 시작했고, 지난해 말 기준 546만톤으로 집계됐다.

특히 원지 가격이 떨어지는 시점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은 수익성 악화에 대한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당초 동남아시아는 유럽산 폐지를 수입해 재생펄프를 만들고, 이를 중국에 수출해 왔다. 하지만 중동 분쟁과 홍해 사태 장기화로 한국산 폐지를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제지사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는데, 분쟁 완화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골판지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점도 있다. 올 상반기 말 기준 국내 골판지 제조사는 약 140여개에 달하는데, 신대양제지(자회사 반월 포함)의 시장 점유율은 12.2% 수준에 불과하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도 다소 버거운 상황이다. 일평균 1200톤의 골판지 원지를 생산할 수 있는 안산공장이 화재로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이에 108만톤(2018년)에 달하던 연간 생산 실적은 현재 67만톤 수준으로 감소했다.
신대양제지는 수익 다변화를 꾀할 수 있는 신사업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대양그룹이 55년 째 골판지업 '외길'을 걸어온 만큼 본업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이종분야 진출이 쉽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 관계자도 "골판지업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신규 사업 계획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제지업계 한 관계자는 "골판지 사업은 업체별 제품 차별화가 쉽지 않은 상황인 만큼 단가 경쟁력을 갖춰야 안정적인 사업 영위가 가능하다"며 "하위업체 인수합병이나 대규모 설비 투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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