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과 반도체 판매 부진, 고대역폭메모리(HBM) 인증 지연, 중국의 추격 등으로 내년도 메모리 반도체 캐펙스(Capex·자본적 지출)를 예년 대비 줄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매년 전체 캐펙스에 50조원, 반도체에 4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이어왔지만 내년에는 메모리에서만 30조원에 못 미치는 투자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HSBC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메모리 캐펙스를 33조원에서 31조원으로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내년도 캐펙스 역시 31조원에서 28조원으로 하향할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증권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내년도 삼성전자 메모리 캐펙스를 기존 30조원대 후반에서 30조원대 중반으로 낮췄다.
삼성전자는 매년 매출 대비 절반에 가까운 대규모 시설투자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 회사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연도별 캐펙스는 ▲2017년 43조7760억원(반도체 23조3456억원) ▲2018년 30조5769억원(23조7196억원) ▲2019년 28조6177억원(22조5649억원) ▲2020년 40조2718억원(32조8915억원) ▲2021년 48조2220억원(43조5670억원) ▲2022년 53조1153억원(47조8717억원) ▲2023년 53조1139억원(48조3723억원)이다.
삼성전자가 별도로 메모리와 파운드리 설비투자를 나눠서 공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통상 파운드리 투자는 10조원 정도 수준으로 진행된다. 이에 최근 반도체 투자에서 메모리 투자는 30조원 중후반대 수준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내년에 30조원 중반에서 최소 20조원 후반대까지 캐펙스가 줄어들면 메모리 투자가 약 10%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 옴디아 등에 따르면 반도체 캐펙스의 세부 현황 추정치는 ▲2017년 D램 5조1000억원, 낸드 7조6000억원, 파운드리 3조원, 건설 8조3000억원 ▲2018년 D램 8조7000억원, 낸드 2조3000억원, 파운드리 3조원, 건설 9조7000억원 ▲2019년 D램 1조6000억원, 낸드 3조4000억원, 파운드리 5조원, 건설 11조1000억원 ▲2020년 D램 6조3000억원, 낸드 5조5000억원, 파운드리 8조원, 건설 9조원 ▲2021년 D램 8조1000억원, 낸드 9조8000억원, 파운드리 10조원, 건설 12조원 ▲2022년 D램 10조원, 낸드 8조5000억원, 파운드리 10조5000억원, 건설 15조5000억원 ▲2023년 D램 12조5000억원, 낸드 9조원, 파운드리 11조5000억원, 건설 16조원 등이다.
업계에서도 삼성전자의 내년도 반도체 전체 캐펙스가 올해 대비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파운드리는 수주 성과가 전무해 투자가 사실상 '올스톱' 될 가능성이 높고, 메모리 또한 반도체 라인 신규 증설 대신 선단공정 전환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아유에서다. 아울러 기존 팹의 경우 건설의 속도를 늦추고 신규 팹은 건설을 연기하는 등 보수적인 운영이 이뤄질 것으로 점치고 있다.
우선 파운드리의 경우 이미 올해부터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기로 한 신규 파운드리 공장의 팹 설비 발주 등을 올 하반기부터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일정 지연 등의 영향으로 내년 초로 미뤘다. 공장 가동 시점도 올해 말에서 2026년으로 늦췄다. 현재 테일러시에 파견된 인력들은 국내로 복귀한 상태다. 평택 P2, P3 등 파운드리 공장의 라인 가동을 일부 중단해 메모리 사업 투입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메모리도 하반기부터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됐던 PC·모바일 수요가 여전히 저조하고 HBM3E의 엔비디아 인증이 늦어지면서 캐펙스가 주춤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HBM3E의 고객사 물량 증가로 인한 D램 1b(5세대 10나노미터) 제품의 캐펙스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삼성전자는 당장 인증 문제로 인해 내년에도 HBM 물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중국 메모리 제조사도 최근 레거시 제품을 대거 늘리면서 범용 제품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의 타격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삼성전자가 HBM 비중을 늘려 다이 사이즈 패널티(동일 면적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칩의 수 감소)로 인해 레거시 D램 캐파가 줄어들면서 범용 제품의 가격이 크게 오를 것으로 기대됐다"며 "하지만 하반기 들어 중국향 물량이 늘고 삼성전자의 HBM 인증이 늦어지면서 삼성의 캐펙스 전략도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최근 메모리 시장이 AI제품과 제거시 제품으로 양분화되고 있어 삼성전자의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범용 제품의 B2C 수요는 둔화되고 있고 중화권 공급이 증가하며 삼성전자의 수요를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마이크론이 HBM에서 삼성전자보다 앞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삼성전자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미즈호증권은 삼성전자가 내년도 HBM 캐파를 72억Gb(기가바이트)까지 줄인다면 최대 18%까지 커머디티(범용) 공급 빗그로스(출하량 증가율)가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캐펙스를 늘리기보다는 기술력 회복과 HBM 시장 영향력 확대에 힘을 쏟아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의진 흥국생명 연구원은 "D램의 경우 내년도 HBM 생산능력 증가에 따른 공급이 제한되겠으나, 수요 둔화와 중화권 공급 증가의 영향으로 1분기 고객사 재고 조정과 함께 메모리 가격의 약세가 전망된다"며 "다만 내년 2분기에는 레거시 재고와 생산 비중 감소하며 메모리 업황의 개선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