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상균 IB부장] 2023년도 이제 겨우 두어 달 남았다. 문득 올 한해를 되짚어 보니 2016년 여름 건설부동산 시장에 발을 내딛은 이후 사상 최악이라는 표현에 이의가 전혀 없을 정도다. 부동산 경기 호황 시절에 사놓은 택지를 썩혀놓을 수는 없는 처지이니, 여기에 주택을 공급해서 분양을 해야 하는데 시장이 좋지 못하니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해가 지나간 사업장이 부지기수다. 그나마 분양을 앞두고 있는 곳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브릿지론에서 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환도 못한 채 연 20%에 달하는 이자만 매달 나가는 사업장도 있다. 분양 추진은 언강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심지어 어느 시행사는 자본출자 금액이 부족해 이마저 대출을 받으려고 하는데 연 35%의 금리를 제시받는다고 한다. 시장에 수요는 넘쳐나는 반면, 공급이 워낙 부족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생겨난 현상이긴 하다.
인창개발과 현대건설이 사들인 CJ 가양동 부지개발사업은 앞서 언급한 사업장들에 비해 사정이 양호한 편이다. 서울이라는 양호한 사업성을 지닌 곳에 위치한 덕분에 본PF 전환도 무난하다는 평이다. 현대건설이라는 든든한 뒷배경이 존재하는 덕분에 금융비용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공사비 상승도 어느 정도 감내할만한 수준이다.
훈풍이 예상됐던 사업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이다. 사업주체인 인창개발이 지난해 9월 건축협정인가를 승인 받았으나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지난 2월 이를 돌연 취소했다. 당시 강서구청은 인가 취소 배경에 대해 담당자 전결 문제나 소방 관련 부서협의 문제 등을 내세웠으나 업계에서는 석연치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자체의 생뚱맞은 몽니 탓에 인창개발은 4개월간 300억원 가까운 이자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에서 김태우 전 구청장이 낙선하면서 사업 추진에 다시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뒷맛이 개운치 않다.
개발업계에서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인허가 그림자 규제를 꼽는다. 그림자 규제는 명시적인 법규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당국이 행정지도나 구두 지시 등으로 건건이 간섭하는 행태를 뜻한다. 특히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주요 인허가 사항이 건축심의, 교통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소방성능위주설계 등 13개에 달하다 보니 그림자 규제가 개입될 여지가 많다.
얼핏 보면 G8 국가를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이런 후진국적인 행태가 남아있다는 점이 어이가 없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CJ 가양동 부지개발 사업에서 강서구청의 인가 취소는 정확히 인허가 그림자 규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기존 구청장이 교체되지 않은 채 인허가 취소가 강행됐다면 사업은 수개월을 질질 끌면서 수천억원의 금융비용을 지출한 끝에 엎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진출을 할 때 여러 리스크가 거론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해당 국가의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역시 인허가 리스크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위치한 가양동에서 똑같은 사례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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