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7조 8000억원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을 놓고 날 선 갈등을 이어가는 것은 수상함 설계 레퍼런스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다. 1번함(선도함)의 설계·건조 레퍼런스를 확보해야 향후 미국 함정 시장을 수월하게 확장할 수 있어서다. KDDX 2~6번 건조함의 경우 양산에 불과해 설계 역량을 입증할 트랙 레코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기업의 재무제표에 나타난 R&D 역량의 경우 연구비 규모와 개발비 자산화 등 지표에서 HD현대중공업이 한화오션을 앞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르면 오는 24일 열리는 방위사업청 분과위원회에서는 사업자 선정의 윤곽이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경쟁입찰, 1번함 공동설계를 주장하고 있는 한화오션이 최근 보안 리스크 문제까지 겹쳐 수주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KDDX 1번함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기본설계를 따낸 HD현대중공업은 상세설계·건조까지 일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사청 출범 이후 18차례 사업에서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상세설계·건조를 전담했다는 논리다. 신현승 방사청 함정사업부장은 지난 2월 국회 토론회에서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공동설계 하는 건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은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한 HD현대중공업의 도덕성을 문제삼는다. 수의계약으로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모두 맡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동설계 방식으로 시공 기간을 줄일 수 있고 국내 조선의 해외 경쟁력 확대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한화오션의 경우 1번함 설계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트랙 레코드가 주는 파급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7조 8000억원의 KDDX 사업은 미국 함정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1번함 설계·건조는 레퍼런스로 남지만 2~6번함의 경우 사실상 양산에 불과해 시장에서 역량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게 된다.
한화그룹 차원에서도 포기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상세설계 업체로 선정되면 무기체계 탑재 등을 진행할 수 있는데 한화그룹은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방산 계열사를 활용해 함정에 무기체계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세설계를 하게 되면 한화그룹 전반의 시너지를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을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화오션은 실제 수상함 건조 실적과 역량 측면에서는 HD현대중공업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HD현대중공업은 2020년대 울산급 배치-III에서 설계와 건조권을 확보했다. 한화오션은 가장 최근 발주된 해군 최신예 호위함인 울산급 배치-IV 1, 2번함을 수주했다. 울산급 배치-IV는 배치-III의 장비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기본설계 없이 발주가 이뤄져 R&D가 대거 투입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R&D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양 사 연구비 지출 규모의 경우도 HD현대중공업이 월등한 편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지난해 기준 연구개발비는 각각 1331억원, 666억원이다. HD현대중공업이 2배 이상 많은 셈이다. 매출에서 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0.92%, 0.6%다.
특히 개발비 자산화율은 눈여겨 볼만한 지표다. 개발비 자산화율은 연구개발비 중 일부를 비용이 아닌 무형자산으로 회계 처리한 비중을 뜻한다. 이는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다. 기업이 경제 효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연구개발비 일부를 비용이 아닌 무형자산으로 인식한다.
지난해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의 개발비 자산화율은 각각 23.6%, 4.8%로 나타났다. 100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해 HD현대중공업은 24억원을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산으로 평가했고 한화오션은 5억원만 인식했다는 의미다.
HD현대중공업은 2022년, 2023년에도 각각 300억원가량의 개발비 무형자산을 인식했고 개발비 자산화율은 28%, 25%를 기록했다. 반면 한화오션의 경우 2020년~2023년 4년 동안 개발비 무형자산 회계처리는 0원이었다. 이는 연구비 가운데 미래 경제적 효익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 없었다는 의미다.
방사청이 한화오션에 대해 '한국형 차기 차기구축함(KDDX)' 개념설계 내용을 '기본설계 제안서'에 무단 도용한 것과 관련해 부정당업체 지정 검토에 들어간 것도 악재다. 지난해 11월 방사청 사업팀은 비밀 원본을 이관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화오션이 2012년 본인들이 수행한 KDDX 개념설계 보고서 원본을 무단으로 추가 생산해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방사청이 한화오션에 대한 행정처분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업체 선정 기준에 이를 포함할지 여부도 따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방사청은 오는 24일 방위사업기획관리 분과위원회를 연다. 이르면 이날 KDDX 사업자 선정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방사청 관계자는 분과위원회에서 결론을 내는지 여부에 관해 "섣불리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25명의 분과위원 중 민간위원은 6명인데 분과위원회는 이들 소수 의견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분과위원회 만장일치로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의결을 거치지만 분과위에서 다수 의견으로 결정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