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최근 기업들이 지난해 연간 실적을 발표하며 속속들이 '성적표'를 받아 들고 있다. 이 성적표가 직장인들의 성과급 봉투 두께로 고스란히 반영되는 만큼 대기업에서 성과급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인공지능(AI) 흐름을 탄 SK하이닉스와 초호황을 맞은 조선 업계는 두터운 성과급 봉투를 받아들었다. 반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석유화학·배터리 업계 등에서는 '곳간'이 닫히며 성과급이 줄거나 빈손으로 새해를 시작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성과급을 자사주로 지급하며 임직원 근로 의욕 고취에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AI 열풍을 타고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낸 SK하이닉스는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초과이익분배금(PS) 규모를 기본급의 1500%로 확정하고 자사주 30주(600만원 규모)도 지급했다. 거의 연봉에 가까운 성과급을 받은 것.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도 한숨 돌렸다.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은 14%로, 지난해 0%보다 오른 수준이었다. 목표 달성 장려금(TAI)은 기본급의 200%로 책정됐다. 적자를 기록한 지난 2023년보다 실적이 개선됐지만 HBM 납품 지연 등 기대치 보다 낮은 실적을 기록한 만큼 직원들 '기 살리기 용'이라는 평가다.
그 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에서 모바일경험(MX) 사업부는 갤럭시 S24의 흥행을 인정 받아 OPI 지급률 44%를 기록했다.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는 9%로 확정됐다.
생활가전(H&A) 실적에 힘입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LG전자도 넉넉한 성과급 봉투를 건넬 수 있었다. H&A 사업본부의 경우 최대 월 급여의 470%를, 전장(VS) 사업본부는 510%의 성과급을 받았다.
초호황기를 맞은 조선업도 곳간이 열리며 기분 좋게 한 해를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기본급의 377%, HD현대삼호는 책임급 이상의 경우 기본급의 74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지난 2013년 이후 성과급 소식이 없던 삼성중공업도 올해 소정의 격려금을 준비했다. 한화오션은 성과급 지급 한도를 기준임금의 최대 800%까지 설정하며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반면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시장의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의 여파가 성과급에도 반영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경영성과급을 기본급의 50%로 책정했다. 지난해 기본급의 340~380%까지 줬던 것에 비하면 대폭 감소한 규모다. SK온도 연봉의 8% 규모의 단기성과급(STI)은 주지만 초과이익분배금(PS)은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SDI는 배터리 사업 부문의 OPI 예상 지급률을 0%로 공지했다.
그동안 성과급 상위권을 차지하며 '기름집'이라 불리던 석유화학업계도 불황 속 성과급 규모가 줄었다. GS칼텍스의 경우 연봉의 12.5%(기본급의 25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는데 이는 지난해 50%보다 줄어든 규모다. HD현대오일뱅크도 위기 극복 격려금으로 직원에게 인당 350만원을 지급했다.
한편 일부 기업들은 성과급으로 자사주를 지급하는 방안도 활용하고 있다. 현금도 아끼고 주가를 부양하는 동시에 임원들의 책임 경영, 직원들의 근로 의욕을 고취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현대자동차, 한화그룹 등에서 이같은 방식을 도입했는데, 이젠 다른 기업들도 도입하는 추세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07년부터 임금단체협상 결과에 따라 자사주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계열사 대표와 임원, 팀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제도를 도입했다. 일정 성과 달성 등 조건을 충족하면 자사주를 주는 제도다.
최근 삼성전자도 임원을 대상으로 OPI 일부를 일정 시점에 자사주로 지급하는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보상(RSA)을 도입하기로 했다. 상무는 성과급의 50% 이상, 부사장은 70%, 사장은 80% 이상을 자사주로 받는다. 등기임원은 100%다. 지급일은 내년 1월이다. 내년부터는 직원에게도 이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