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정동진 기자] 혈당측정기 제조 전문업체 '아이센스'가 상장 후 처음으로 전환사채(CB)를 발행해 500억원 규모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생산능력 향상을 통한 퀀텀점프를 도모하기 위해 실탄을 확보한 모습이다. 신사업의 성장성과 재무 상태 등을 고려할 때 발행사에 유리한 조건을 챙겨 발행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아이센스는 최근 500억원 규모의 1회차 CB를 발행했다. 1회차 CB는 5년 만기에 전환가액은 1만9279원으로 정했다. 전환청구는 2025년 4월30일부터 개시된다.
전환에 따라 발행할 주식 수는 259만3495주로 전체 발행 주식 총수의 8.58%다. 최저 조정가액은 1만6388원으로, 기존 전환가액의 85% 수준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 모두 0%, 즉 '제로쿠폰'으로 발행됐다는 점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표면이자율은 0%로 발행이 되더라도 만기이자율로 1~3%는 제시해야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이센스는 500억원의 자금을 이자 없이 조달한 셈이다.
실제로 미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며 이자율이 0%인 CB 발행이 늘고 있지만, 발행액 기준을 100억원 이상으로 한정하면 10% 내외에 불과한 상황이다. 딜사이트(Dealsite)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발행된 140건의 CB 중 33건(23.5%)가 일명 '제로쿠폰'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중 발행액이 100억원 이상인 CB는 17건(12%) 뿐이다.
아이센스는 주로 은행권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2013년 코스닥 상장을 위한 유상증자를 제외하고 자본시장에서 직접 조달은 없었던 것이다. 2024년 1분기 말 별도 기준 총차입금(리스부채 포함) 규모는 1318억원 수준이지만 부채비율은 57.65%에 불과하다. 충분히 은행권 대출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만큼 이번에 지분율 희석 가능성을 감내하고 CB 발행에 나선 것은 각자대표인 차근식·남학현 대표의 큰 결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아이센스가 첫 CB 발행에서 이 같은 조건을 보장받은 것은 성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아이센스는 상장 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 왔다. 주력 제품인 자가혈당측정기(BGM)를 바탕으로 2013년 829억원이던 매출은 2023년 2651억원으로 219%가량 증가했다. 상장 당시 1%대였던 BGM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5%에 가깝게 끌어올린 덕분이다.
CB 투자자의 면면을 살펴봐도 아이센스의 성장성에 베팅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벤처캐피탈(VC)업계 운용자산(AUM)순위 1위와 3위인 한국투자파트너스(2조5000억원)와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2조600억원)가 주요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다.

이 밖에도 비슷한 시기에 CB를 발행한 의료기기 전문 업체 루닛과 발행 조건을 비교하면 아이센스의 '발행사 우위'의 발행조건이 더욱 돋보인다. 루닛은 지난 3일 1665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하면서 표면이자율 1%, 만기이자율 8%로 결정했다.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도 아이센스에 유리하게 정했다. 아이센스의 풋옵션 개시 시기는 발행 후 24개월 이후다. 통상적으로 사업 성장성이 높거나 재무 구조가 안정된 기업이 CB를 발행할 때 풋옵션은 발행 후 24개월 이후로 정해지는 편이다. 상환 안정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되면 발행 후 12개월 이후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센스는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생산능력(CAPA) 향상에 투자하기로 했다. 올해부터 2026년까지 송도 2공장의 연속혈당측정기(CGM) 자동화 생산라인 구축에 5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현재 연 50만개인 생산능력을 470만개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앞서 아이센스는 지난해 연속혈당측정기 '케어센스 에어 2.0'를 출시했다. 현재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172억달러(약 23조원)였던 글로벌 혈당 시장은 2029년 313억달러(42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도 아이센스는 주요 관계사인 프리시젼바이오 등의 지분 매각을 통해 FDA 승인을 위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상 자금 300억을 마련할 예정이다. 다만 지난해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였던 일본 파트너사 아크레이와는 협상이 결렬된 상태로, 현재 2차 우선협상대상자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센스 관계자는 "FDA 심사가 오는 2026년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에 맞춰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등 양산 준비를 하고 있다"며 "글로벌 CGM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것으로 모두가 예상하고 있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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