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양대 국적항공사 합병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최정호 대한항공 부사장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2022년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통합 총괄 직을 맡아온 최 부사장은 두 대형항공사(FSC)의 일원화 작업부터 저비용항공사(LCC) 3개사 합병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전망이다.
2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현재 미국 경쟁당국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기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대한항공은 올 상반기 중으로 미국 심사를 통과하고, 연내 통합을 위한 실무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2020년 말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을 공식화했고, 2021년 1월 총 14개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현재 유럽연합(EU)를 포함해 총 13개국이 두 항공사 합병을 승인했거나, 심사·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사를 종료한 상태다. 미국의 기업결합 승인 절차는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 최 부사장, FSC·LCC 모두 경험…아시아나 인수통합 총괄 임명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완료되면 30년 넘게 이어지던 양강 체제가 단일 국적사 체제로 전환된다. 하지만 두 항공사를 완전히 합치는 과정은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두 항공사가 오랜 기간 경쟁 관계를 구축해 온 만큼 내부 융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주력 기재와 정비, 정보통신(IT), 기내 서비스, 조직문화 등 사실상 전 부문에서 큰 차이를 가져왔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점을 인지했던 대한항공은 국내 공정거래위원회가 두 항공사 합병을 조건부 승인(2022년 1월)한 직후부터 통합 작업을 준비해 왔다. 대한항공은 가장 먼저 2022년 4월 단행한 정기 임원인사에서 대한항공 계열 LCC인 진에어의 대표였던 최 부사장을 아시아나항공 인수통합 총괄로 발령을 냈다.
1964년생으로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한 최 부사장은 1988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영업총본부, 여객노선영업부, 여객마케팅부, 일본지역본부장 등을 역임한 현장 중심 '영업 전문가'으로 꼽힌다. 특히 최 부사장은 2016년 진에어로 이동해 조원태 회장(당시 진에어 각자 대표이사)과 합을 맞추며 3세 오너경영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업계는 최 부사장을 아시아나항공 통합 작업을 진두지휘할 최적임자로 판단했다. 영업 쪽에서 굵직한 획을 그은 최 부사장은 호탕한 성격과 과감한 추진력을 갖췄을 뿐더러 권위적이지 않은 이미지로 대내외적인 신망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FSC와 LCC 모두에서 경험을 쌓았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대한항공은 합병 절차가 장기화되자 최 부사장에게 리커버리(Recovery) 추진 총괄과 기내 및 기내식 서비스 개선 책임 총괄을 겸하도록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만큼 항공업황 회복에 맞춘 선제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도록 한 것이다.
◆ 메가캐리어 첫 단추…통합계획 단계적 이행 전망
최 부사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잡음 없이 통합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를 자회사로 편입하고 약 2년 뒤 합병할 예정이다. 또 통합 항공사 출범 2~3년 뒤에는 LCC 3사(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를 합칠 계획이다. 연말이나 내년 초께 자회사 편입이 이뤄진다면 오는 2030년까지는 두 항공사의 물리·화학적 결합이 진행된다는 의미다.
최 부사장은 가장 먼저 인수합병 후 통합계획(PMI)을 단계적으로 이행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이 2021년 6월 제출한 PMI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계열 LCC의 통합 방안 ▲고용유지 및 단체협약 승계 ▲지원사업 효율화 ▲지주회사의 행위 제한 이슈 해소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업계는 두 항공사가 기업결합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 노선 운수권과 슬롯(시간당 이착륙 횟수)를 대거 반납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최 부사장이 영업 뿐 아니라 노선 운영에도 정통한 만큼 경쟁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효율적인 노선 운용 전략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최 부사장은 약 5년 간 진에어를 이끌었던 경험을 살려 조직 재편과 슬림화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안전운항체계 준비와 IT시스템을 일원화하는 한편, 항공정비(MOR)와 지상조업 등 중복 사업부 인력의 재배치도 불가피하다.
PMI 조건 중 일부는 이미 완료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2022년 6월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자회사였던 진에어를 인수했다. 당시 한진그룹 지배구조는 '한진칼(지주사)→대한항공·진에어(자회사)'였다. 지배구조 개편 없이 통합이 진행될 경우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행위 제한 위반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해당 법에 따르면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한진칼 자회사였던 진에어가 손자회사가 되면서 지주사 행위제한은 해소됐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최 부사장은 진에어가 국토교통부 제재를 받는 동안 위기 대처 능력과 탁월한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성공적인 융화는 규모의 경제 실현과 글로벌 메가캐리어 탄생을 위한 첫 단추인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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