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범찬희 기자] "몇몇 국가들이 치고나기는 했지만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TDF(타깃데이트펀드) 시장규모가 컸다. 한국이 전 세계 TDF 시장을 리드하게 된 건 운용사들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상품을 내놓은 것과 더불어 TDF에 대한 시장의 이해를 높이는데 힘써온 덕분이다."
3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투자 리서치 기업인 '모닝스타' 주최로 열린 '2023 모닝스타 이그제큐티브 포럼'에서 정승혜 상무(모닝스타코리아 리서치)는 "전 세계 TDF 시장에서 9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의미있는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는 스웨덴, 영국, 캐나다, 한국 정도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13년만 해도 14곳으로 한정됐던 TDF 도입 국가는 현재 27곳에 이른다. 글로벌 TDF 시장의 자산 규모는 같은 기간 3배 성장한 3조5000억달러(약 4717조원)에 달한다.
TDF란 투자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퇴직연금 펀드를 일컫는다. 자산 배분 설계도면인 글라이드패스(Glide Path)를 활용해 은퇴 시점이 오래 남아있을 때는 위험자산인 주식에 집중투자한다. 향후 은퇴시점이 다가오면 안전자산인 채권의 비중을 확대한다.
특히 지난해 7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되면서 DC(확정기여)형이나 IRP(개인형) 가입자를 중심으로 TDF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11조원 수준인 국내 TDF 시장이 매년 20~30%씩 성장해 2027년 무렵에는 35조원 규모에 다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 상무는 한국이 글로벌 TDF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에 오르게 된 배경으로 운용사의 노력을 꼽았다. 그는 "운용사로 대표되는 시장 참여자들이 스터디를 게을리하지 않고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며 TDF 저변을 넓히는 데 힘써왔다"며 "TDF가 가진 장점을 알기 쉽게 홍보한 덕분에 투자자들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TDF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20개 운용사가 참전 중인 국내 TDF의 포문이 열린 건 미래에셋자산운용을 통해서다. 지난 2011년 6월 미래에셋운용에서 선보인 '라이프사이클펀드'(현 미래에셋자산배분TDF2040)가 국내 TDF 1호로 통한다. 이후 삼성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KB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키움투자자산운용 등 대형사에 이어 교보악사자산운용, 우리자산운용과 같은 중형사가 참전하면서 판을 키웠다. 은퇴시점을 의미하는 빈티지도 현재 '2060'까지 출시된 상태다. 지난해 6월에는 ETF(상장지수펀드) 형태로 TDF에 투자할 수 있는 신개념 비히클인 'TDF ETF'도 등장했다.
아울러 정 상무는 연금 선진국인 미국에서 TDF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는 만큼 운용사들이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활동)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언급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지난 2022년 401K(한국의 DC형에 해당)에 수수료가 과도하게 책정됐다는 이유로 82건의 소송이 발생했다. 보수와 성과에 한정됐던 소송의 내용도 최근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의 적절성을 따지는 문제로 다양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 상무는 "한국의 경우 미국과 상이한 부분이 있어 디폴트옵션을 어떤걸 선택했느냐를 가지고 사업자가 소송을 당할 구조는 아니다"면서도 "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발전하려면 장기적인 자산에 대해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지고 운용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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