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보라 기자] 수출금융 한도를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국수출입은행법(수은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미뤄지고 있다. 폴란드 무기 수출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프로젝트 등 여러 대규모 계약이 엮여 있는 만큼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부터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과 양기대·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현행 15조원인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금 한도를 25조~35조원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은 수은법 개정안 3건을 발의했으나 논의가 여전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
여야는 지난해 11월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고 수은법 개정안을 논의하고자 했다. 윤희성 수출입은행장도 최근 수은법 개정안 처리를 요청했고 기획재정부도 수은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출자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수은법 개정안 논의는 뒷전에 밀려 지지부진한 상태다.
문제는 수은법 개정이 늦어지면 대규모 지원이 필요한 사업에 수출금융 제공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폴란드 계약 등 방산 수출이 대표적 사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K-2 전차, K-9 자주포, FA-50 전투기 등을 수출하기로 폴란드와 약 17조원 규모의 1차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어 지난해 12월 약 30조원 규모의 2차 수출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수은의 신용공여 한도에 발목이 잡혔다. 수은은 특정 대출자에 자기자본의 40%까지만 대출을 내줄 수 있다. 지난해 자기자본은 자본금 15조원을 합쳐 18조4000억원이다. 특정 기업에 부여할 수 있는 한도는 자기자본의 40%인 7조4000억원이다. 1차 계약에서 수은은 무역보험공사와 각각 6조원씩 지원하면서 한도의 대부분을 소진했다.
2차 계약에서는 30조원 규모가 논의되고 있으나 남아 있는 한도는 1조3600억원에 불과하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이 나서 신디케이트론으로 약 3조5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나 턱없이 부족한 금액인데다 수은 대출보다 금리가 높다.
물론 업계 일각에서는 폴란드 방산 수출 자체는 시급한 일이 아니라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계약이 늦어지면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규모가 큰 만큼 수년에 걸쳐 진행되는 계약이기 때문에 연내 처리해야만 한다는 데드라인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며 "실제로 법 개정과 이후 출자 진행도 시일이 꽤 걸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업체에 계약을 뺏길 우려가 있으니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폴란드 방산 수출 계약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는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도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밝혔고 내년 세계 최대 규모 방산시장인 미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2024년 방산 수출 목표액은 200억 달러 규모로 2027년까지 방산 수출 4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방산 수출이 출발선을 끊었을 뿐 한국의 수출금융이 발전하고 프로젝트가 대형화하면서 수출금융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현행 법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프로젝트와 같은 대형 수주도 산재해 있는 만큼 수은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점점 늘어나는 대규모 수출금융을 지원하려면 자기자본 한도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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