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홍기 기자] #연인이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다. 여자친구가 한 매장에 들러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고른 옷을 들어 보인다. 각각 검정색과 흰색 계열의 원피스다.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질문에 남자친구가 흠칫 당황하다 모두 예쁘고 잘 어울린다고 답한다. 여자친구가 그의 답변에 성의 없다는 핀잔을 준다. 남자친구가 무심코 검정색 원피스를 추천하자, 흰색 원피스를 선택하지 않은 구체적 이유까지 요구한다. 진땀을 흘리던 남자친구가 온갖 미사여구와 검정색 원피스에 대한 SWOT(Strength, Weakness, Opportunity, Threat) 분석까지 더해 보고서를 제출(?)하자, 여자친구가 겨우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얼마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매장을 나오던 남자친구 눈에 들어온 것은, 여자친구가 최종 선택한 흰색 원피스였다.

본인의 선택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해당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 선택을 종용하는 상황이 남을 위한 나름대로의 배려이자 성과의 향유가 아니라, 남을 아랑곳하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동의 없이 '갑'과 '을'의 관계를 정립하고 실패한 선택의 책임과 부담을 '을'에게만 떠넘기겠다는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새삼 주식을 사고 파는 일부 소액주주(개미)들 또한 선택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있단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제대로 된 사전 지식 없이 무조건 돈을 벌게끔 주식 종목을 남에게 추천받고, 선택해달라는 식이다. 돈을 벌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에서 피어난 데 이어, 차마 성숙하지 못한 행보다.

이처럼 비틀린 선입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예전에 나이 많은 한 지인한테 반 강제에 못이겨 주식 종목을 추천한 적이 있었다. 해당 주가가 며칠 간 상승세를 보이자, 지인은 나이를 앞세워 추가 투자를 빌미로 제대로 된 기업 분석까지 요구했다. 이 당시만 해도 어찌 됐든 돈을 벌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지만 며칠 후 끝내 폭삭 주저앉았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지인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면서 시작됐다. 미약하게 남아있던 의가 상한 것은 물론이오,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부터 시작해서 피해를 보상해 달라는 협박까지 받았다. 결국 지인의 가족까지 나서며 유야무야 종결됐지만, 해당 지인과의 관계는 끝났다.

언론계에 남루하게 몸담고 있는 현재도 주주들로부터 종종 이 같은 '선택 아닌 선택'을 강요받는다. 하락장인 요즘 급부상하는 종목이 있는 지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반가울 정도다. 

나아가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 주가에 영향을 미칠 호재와 악재를 미리 알려 달라거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주문하는 주주도 있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사는 작성 후 미리 공유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 자체도 황당하지만 표현 또한 정중함이란 가면을 쓴 채 거칠고 노골적이다. '주가가 상승할 수 있도록 특정 이슈를 주목해서 (기사를)써라. 언론계에 종사하는 너희들의 선택으로 주가가 떨어지면 책임을 져라'라는 식이다. 

앞선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요구한 '선택'의 뜻은 단정하기 어렵다. 비단 원피스를 골라 달라는 게 아닌 자신과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지,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평소에 자신을 얼마나 관심 있게 생각하는 지를 물어본 게 아닐까 추정만 할 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적어도 여자친구는 남자친구가 추천한 검정색 원피스가 아닌 흰색 원피스를 '스스로' 선택했단 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