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만났다. 상법 개정, 반도체특별법과 관련된 현안에 대해 논의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양측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회장과 이 대표의 만남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사법 리스크로 삼성전자 내·외부에서 리더십이 위축됐지만 차기 대권주자인 이 대표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올해 본격적인 리더십 강화에 힘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대표는 20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삼성 청년 SW 아카데미(SSAFY)'를 방문했다. 이날 이 회장은 직접 1층 로비로 나와 이 대표를 환대했다. 이에 이 대표는 "왜 나와 있나"라고 물었고 이에 이 회장은 "기를 많이 받을 것 같다"고 화답하며 부드러운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후 이들은 11층으로 올라가 짧은 모두 발언 후 10분 동안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다.
모두 발언에서 이 대표는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살고, 삼성이 잘 살아야 삼성에 투자한 사람도 잘 산다"며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만큼 대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모두의 삼성이 되길 바란다"며 경제성장을 위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견인차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회장은 "SSAFY는 '사회와의 동행'이라는 이름 아래 삼성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며 "사회 공헌을 떠나서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의 미래를 위해, 미래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후 10분 동안 진행된 비공개 회담에서 최근 화두로 떠오른 상법 개정, 반도체특별법 등 현안에 대한 대화는 오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한 상법 개정안과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인프라 투자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은 재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의 경우 주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회담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10분의 회담 동안 반도체특별법, 상법 개정안 등 주제는 다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이 대표와 이 회장은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 등에 대응하려면 기업과 정부가 공공외교로 협력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조 대변인 "(이 회장과 이 대표가) 일본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공공외교가 부족한 게 사실인 만큼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 대표가 앞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단순한 정부 지원을 넘어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고 했다.
또한 이 대표는 이 회장에게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 군산의 중소기업인 풍림파마텍이 코로나19 당시 삼성전자와 정부 지원을 받아 최소잔여형(LSD) 주사기를 개발했던 사례를 들며 상생을 주문한 것.
조 대변인은 "이 대표는 삼성전자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LSD 주사기 공정을 개선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에게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며 "이에 이 회장은 (LSD 주사기 개발이) 최근에 가장 보람을 많이 느낀 일이었다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 외에 양측은 SSAFY의 운영 방식과 규모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 대변인은 "오늘 자리는 이 대표가 SSAFY 프로그램 현장을 둘러보고 AI 인력 양성을 위한 협력 모델을 구상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날 회담에서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진 않았지만 이 회장과 이 대표가 만난 것 자체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회장은 수년 간 사법 리스크로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리더십 부족에 대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이번 만남을 통해 재벌 총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오늘 만남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이 회장은 삼성전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리더십이 흔들리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대표 등 정치권이 먼저 손을 잡아준다면 이 회장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 기업들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정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누구에게라도 도와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게 재벌 총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 대표가 이 회장을 만났다는 것은 '앞으로 대통령이 되면 시장의 요구에 화답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며 "시장에도 긍정적인 사인"이라고 전했다.
반면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일선 CXO 연구소장은 "기업인으로서 여야 가리지 않고 정치인을 만나는 건 당연하다"며 "논의를 하더라도 원론적인 수준에서 그쳤을 것이다. 세부적으로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할 자리는 아니던 것으로 보인다.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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