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서재원 기자] 지난 20여년간 출자자(LP)와 운용사(GP)로서 파트너십을 이어온 국민연금과 MBK파트너스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부터 MBK의 투자 전략을 부담스러워했던 국민연금이 이번에 갑작스러운 홈플러스 기업회생으로 인해 막대한 투자 손실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2015년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 당시 공동투자자로서 6121억원을 베팅했다. 구체적으로 프로젝트펀드를 통해 상환전환우선주(RCPS)에 5826억원, 블라인드펀드를 통해 보통주 295억원을 투자했다.
RCPS 투자의 경우 홈플러스 인수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한국리테일투자'가 발행한 RCPS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현재 국민연금은 투자원금 가운데 리파이낸싱(자금재조달) 및 배당금 수령을 통해 RCPS 3131억 원을 회수했다.
국민연금은 나머지 투자금 회수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회수 가능 여부는 미지수다. 메리츠금융(1조2000억원) 등을 비롯한 선순위 채권만 수조원에 달하는 만큼 후순위 채권자인 국민연금 순서까지 변제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회생 과정에서 법원이 RCPS 투자자를 채권자가 아닌 주주로 판단한다면 변제 순위는 가장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MBK파트너스의 기습적인 회생절차 개시에 국민연금은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 통상 기업이 회생절차를 신청할 경우 채권자, 주요 주주들과 사전 논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홈플러스 회생 신청 직전까지 MBK파트너스로부터 어떠한 정보도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지난 2006년 MBK파트너스 펀드에 첫 출자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2008년에는 MBK파트너스와 외자유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신뢰 관계를 쌓기 시작했다. 이후 국민연금은 해외 LP가 대부분인 MBK파트너스의 블라인드펀드 꾸준히 LP로 이름을 올렸으며 하이마트, 코웨이 등 굵직한 투자 건에 대해서 공동 투자자로 나서기도 했다.
최근 MBK파트너스가 해외 펀딩에 애를 먹으면서 국민연금이 더 각별한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 투자가 어려워지면서 해외 LP 사이에서 아시아펀드에 대한 출자 기조가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MBK파트너스가 이례적으로 국내 출자사업 문을 두드렸을 때 국민연금이 손을 내밀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면서 곤란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분쟁의 캐스팅보트로 떠오르면서 MBK파트너스에 불편한 기색을 표하기도 했다. 실제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 자금이 우호적인 M&A를 통한 기업구조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아니라 적대적 M&A를 통한 경영권 쟁탈에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IB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홈플러스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국민연금이 당분간 MBK파트너스와 거리두기에 나설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정치권을 비롯해 전방위적으로 MBK파트너스의 책임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역시 공동 투자자나 LP로 참여하기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경우 자연스레 국민연금을 제외한 다른 국내 기관 LP들도 거리를 둘 가능성이 높다.
지난 9일 민주당이 개최한 간담회에서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홈플러스를 사모펀드가 인수하면서 방만하고 무분별한 경영으로 사태를 초래한 것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남근 의원도 "MBK는 자기자본보다는 인수 회사인 홈플러스의 자산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는 LBO(차입매수) 방식을 사용했다"며 "계속 홈플러스의 자산이 줄어들게 되면서 정상적 영업을 못 할 것이라는 우려가 인수 당시부터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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