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종인 논설위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국 금융시장을 구한 건 견고한 민주주의 시스템이었다.
시장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는 대부분 정치에서 촉발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동사태 등에서 목격하듯 정치적 오판은 한순간에 시장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 역시 같은 맥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규 시장이 열리지 않은 야간이라 파급효과가 제한적이었지만 계엄선포 직후 금융시장의 가격변동은 패닉 그 자체였다.
"무장 계엄군 230여명이 24차례에 걸쳐 군 헬기를 타고 국회 경내로 진입했고, 50여명은 국회 외곽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김민기 국회사무처장)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광경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누군가 이 상황을 되돌려 놓지 못하면 어떡하지, 불안의 먹구름이 시장을 패닉으로 몰아갔다. 소중한 재산을 금융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시장 참여자는 밤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절체절명의 시간이었지만 한 가닥 희망은 있었다.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무효화할 수 있는 국회가 완전히 마비되지 않은 채 가까스로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견제하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다.
헌법 제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 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근거해 계엄을 선포한 것이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같은 조 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무력화하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다.
모든 국회의원에게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 달라"는 공지를 보낸 우원식 국회의장은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갔다. 국회로 들어가는 문은 이미 경찰에 의해 차단돼 있었다. 우 의장의 공지를 받은 여야 국회의원들 역시 담을 넘어야 했다.
국회의원이 하나둘 모였고 새벽 1시쯤 재적의원(300명)의 과반이 넘는 190명이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190명 국회의원은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에 대한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국민의힘에서도 17명(곽규택 김상욱 김성원 김용태 김재섭 김형동 박정하 박정훈 서범수 신성범 우재준 장동혁 정성국 정연욱 조경태 주진우 한지아) 의원이 표결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졌다.
이 시간 국회의사당 안에서는 의원 보좌진과 계엄군의 거친 몸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진입하려는 계엄군을 막으려는 국회 직원들이 문짝과 책상,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소화기를 분사했다. 과격하지는 않았지만 몸싸움도 볼 수 있었다.
국회 정문 앞에서는 시민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었다. 계엄선포 소식을 듣고 "국회를 지키자"며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에 모인 시민들은 계엄군의 총칼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엄해제"를 외쳤다. 약 4000명이 국회 앞에 모인 것으로 추산됐다.
긴박한 대치 상황은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급반전됐다. 안 그래도 눈에 띄게 소극적이었던 계엄군은 한순간 썰물처럼 국회를 빠져나갔다.
한 계엄군은 시민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기도 했고, 물러나는 계엄군 등 뒤에 "고생했다, 우리 아들들"이라고 소리친 국회 직원도 있었다. "대한민국 만셰'를 외치는 시민도 있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1987년 헌법개정에서 77조 5항이 빠졌다면 박정희 대통령 사망을 계기로 신군부에 의해 진행된 1979~1980년의 계엄정국이 재연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정신도 중요하지만 이를 시스템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것, 시장경제는 바람 앞 촛불처럼 늘 흔들리지만 뿌리를 지탱하는 민주주의란 토양이 건강하고 튼튼하면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역사적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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