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유범종 차장] 바야흐로 주주총회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는 예년과는 달리 각 기업들의 주주총회장이 뜨겁다. 국내에도 주주행동주의가 확산되며 소액주주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다. 주주행동주의란 주주들이 시세차익에만 주력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특히 올해 주주총회에서 주목 받고 있는 기업 중 하나는 KT&G다. 행동주의 펀드인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는 이달 28일 열리는 KT&G 주주총회에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취득 등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다양한 사안들을 제안한 상태다. FCP는 현재 KT&G 지분 약 1%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요구는 주당 1만원의 배당이다. KT&G가 이사회를 통해 결정한 작년 결산배당 주당 5000원의 정확히 두 배 규모다. FCP는 KT&G의 주가가 오르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소극적인 주주환원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이 회사가 보유한 적립금과 잉여금의 합이 9조원에 달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주당 1만원의 배당 요구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KT&G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해마다 약 1조원에 달하는 환원정책을 가져가고 있는데 현재보다 두 배나 높은 배당 확대는 과도한 요구라고 항변한다. 또한 향후 5년간 생산설비 증설을 위해 약 3조9000억원에 달하는 투자집행이 예정돼 무리한 배당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이번 주주총회의 결론은 업계 선례로 남을 수 있어 관련기업들과 주주들의 촉각도 쏠리고 있다.
배당은 기본적으로 이익잉여금을 원천으로 한다. KT&G의 작년 연결기준 이익잉여금은 2조2519억원이다. KT&G가 FCP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다면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만 약 2조4000억원에 달하는 재원을 써야 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는 지연되거나 차입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배당의 딜레마가 나온다. 기업이 주주가치를 제고하려면 대표적인 환원정책인 배당을 늘려 단기간에 많은 이익을 주주들에게 돌려주거나 아니면 사업투자를 통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방법이 있다. 기업이 한 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일정한 가운데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업들은 이에 따라 항상 선택의 문제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특히 최근에는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배당보다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유보금을 늘리는 선택을 하는 기업들도 상당히 늘고 있다. 일례로 LG생활건강의 경우 올해 배당(2022년 결산배당)을 전년보다 70% 가까이 줄이기도 했다. 시장 일각에선 이 회사의 이익잉여금이 5조5424억원(2022년 말 기준)이나 되는데도 배당을 크게 줄인 건 주주이익을 훼손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LG생활건강은 향후 시장 악화를 대비한 현금안배 차원에 더 무게를 뒀다는 입장이다.
기업과는 달리 소액주주들은 항상 단기이익인 배당 확대에 더 큰 무게를 둔다. 기업이 유보금을 활용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까지는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KT&G에 대한 FCP의 배당 확대 요구 역시 실상은 KT&G의 기업가치 제고보다는 펀드의 투자수익률을 높이는데 그 목적이 클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배당의 딜레마는 일회성 주주환원이냐 미래 기업가치 제고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단기이익에만 매몰되면 기업의 미래성장을 담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기업과 주주들이 서로의 요구대로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방향이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이 될지에 대해 잘 판단하고 서로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하루빨리 정착되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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