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이 부친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에 버금가는 지배력을 구축했지만, 대표이사 타이틀에는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지주사 ㈜삼표와 핵심 상장사 삼표시멘트는 물론 본인이 최대주주인 회사에서도 사내이사만 맡고 있어서다. 시장에선 사업 특성상 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법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정 사장이 등기임원에만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도원 회장 외아들인 정대현 사장은 삼표그룹을 물려받을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다. 2005년 삼표그룹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 지 올해로 19년차다. 정 사장이 차곡차곡 경영성과를 쌓는 동안, 삼표그룹은 순조로운 3세 승계를 위해 지배구조 정리 작업에 돌입했고, 지주사 체제 전환과 수직계열화는 정 사장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졌다.
2015년 단행한 대형 인수합병(M&A)도 정 사장 승계와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상장 계열사가 전무할 만큼 보수적이던 삼표그룹은 업계 4위이던 동양시멘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삼표는 동양시멘트를 지배할 지주회사인 삼표에스씨를 신설했다. 산업은행PE와 컨소시엄을 꾸린 삼표에스씨는 총 8300억원을 들여 최종 인수에 성공했다. 정 사장은 인수 직후 동양시멘트 CMO(최고마케팅책임자)이자 사내이사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더욱이 삼표그룹 실질 지주사는 ㈜삼표지만, 정 사장 개인 회사인 에스피네이처가 또 다른 지주사로써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에스피네이처를 통해 그룹사 전반에 관여하는 정 사장은 ▲㈜삼표 ▲삼표시멘트 ▲에스피네이처 ▲삼표레일웨이 ▲에스피에스엔에이 ▲에스피에스테이트 ▲디에이치씨인베스트먼트 총 7개 계열사의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정 사장은 2018년 1월 삼표시멘트 대표이사에 취임하며 경영 승계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약 1년 만인 2019년 3월 외부 인사를 영입해 신임 대표로 앉혔고, 정 사장은 사내이사로만 남았다. 외부에서 전문경영인(CEO)을 데려온 표면적인 이유는 실적 개선이었다. 하지만 정 사장의 사임이 워낙 갑작스러웠던 만큼 그 배경에 의구심을 품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업계에선 정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를 마다하는 배경으로 주력 사업의 태생적 한계를 꼽고 있다. 삼표그룹은 시멘트·골재·레미콘 사업을 영위하는 만큼 매년 안전사고가 발생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실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작년 1월만 해도 삼표산업에서 인명사고가 발생, 관련법 1호 처벌 기업이란 오명을 썼다.
이렇다 보니 정 사장이 비(非)오너 경영인을 앞세우는 일종의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 사장은 충분한 보수를 챙기면서도,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너일가가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계열사별 독립 경영을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정 사장이 7개 계열사 등기임원으로 올라있다는 점에서 독립 경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아울러 현 삼표시멘트 대표이사인 이종석 부사장이 정 사장보다 직급이 한 단계 낮다는 점도 이러한 관측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삼표그룹 관계자는 "정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지 않고 사내이사만 맡는 특별한 사유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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