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정인욱학술장학재단이 염불보단 잿밥에 관심을 보이는 모양새다. 그룹에서 출연한 기부금이 모두 자본 확충에 사용하면서 20년 만에 15배에 달하는 외형 성장을 일궈낸 까닭이다. 재단이 본연의 역할에 매진하기 보단 몸집 키우기에 집중하다 보니, 일각에선 오너 3세인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사진)에게 경영권을 안전하게 이양하기 위해 공익법인을 악용하고 있단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인욱학술장학재단은 2001년부터 창업주 차남인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때부터 그룹의 전폭적인 출연금 지원이 시작됐다. 17억원 수준이던 재단 자본금은 23차례의 증액을 거쳤고, 지난해 1월 기준 261억원으로 늘어났다.

국세청 홈택스에 따르면 정인욱학술재단은 공익재단 공시가 첫 시행된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총 170억원을 출연 받았다. 미공시 기간까지 고려하면, 누적 출연금은 2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기부금 조성에는 ㈜삼표와 삼표피엔씨, 삼표이앤씨, 삼표산업, 네비엔, 팬트랙 등 계열사 대부분이 동원됐고, 현재는 에스피네이처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

재단은 그룹사에서 받은 출연금을 고스란히 정기예금으로 넣었다. 2021년 기준 정기예금으로 분류된 단기투자자산은 총 240억원이고, 장기투자자산(연금보험)은 20억원이다.

설립시 출연 받거나 기부, 기타 무상으로 취득한 자산을 기본재산이라고 칭한다. 일종의 여윳돈 개념인 기본재산은 향후 재단의 운용수익이 줄어 목적사업(공익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꺼내 쓸 수 있다. 당장 재단 운영에 애로사항이 없다면, 차곡차곡 적립금처럼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정인욱학술재단이 공익사업으로 지출하는 비용은 매년 줄어드는 양상이다. 5억원에 육박하던 사업비는 현재 절반 수준인 2억원대에 그치고 있지만, 출연금은 일체 건들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재단 운영의 목적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각서 나오고 있다. 재단 자본금이 정도원 회장 장남인 정대현 사장의 승계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표그룹의 지배구조는 '정도원 회장→㈜삼표→삼표시멘트'로 연결돼 있고, 정대현 사장은 에스피네이처를 통해 에스피에스앤에이 등 7개의 계열사를 거드리고 있다. 향후 정 사장이 부친 정 회장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경영권을 승계 받을 지 아직은 불투명한 상태나, ㈜삼표 지분을 바로 확보하는 게 정공법이다.

정 사장과 에스피네이처가 보유한 ㈜삼표 총 지분율은 30.77%로, 정 회장(65.99%)보다 35.22%포인트 적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공익재단은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을 출자 총액의 5% 미만으로 보유할 수 있다. ㈜삼표가 2020년 단행한 유상증가에서 책정된 주당금액 5000원으로 대입해 볼 때, 정 사장은 재단 자본금 중 14억원 가량만 활용해도 5%의 우호지분을 가질 수 있는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공익재단을 경영권 승계를 위해 편법 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자본금 확충만 보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공익사업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만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재단과 관련해서는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