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어업계 1위인 한국타이어그룹 오너가의 경영권 분쟁 불씨가 여전하다. 법원이 조양래 회장의 한정후견심판 정신감정을 결정한 상황에서 내년 3월에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장남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부회장과 차남인 조현범 대표이사 사장의 등기임원 임기 만료도 예정돼 있다. 오너 일가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부친인 조 회장 보유지분을 인수해 경영권 분쟁 승기를 잡은 조 사장은 판세 굳히기에 돌입한 분위기다. 조 부회장 또한 개인회사 설립을 통한 새로운 발판 마련과 함께 부친의 정신감정 추진 등 투 트랙 전략을 가동해 나가고 있다. 경영권 분쟁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는 변수들이 곳곳에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팍스넷뉴스는 한국타이어그룹 경영권 분쟁의 현재 판도를 분석하고, 향후 전개 양상과 변수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유범종 기자] 한국타이어그룹 오너가(家) 후계구도는 작년 조양래 회장이 장남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그룹 지주회사) 부회장이 아닌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지주회사 보유주식 전부를 넘겨주면서 사실상 차남에게 기울었다. 후계에서 밀린 조현식 부회장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조 부회장에게는 아직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카드들이 남아있다.
특히 최근 조양래 회장에 대한 성년 후견인 심판이 진행되면서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기울어진 그룹 경영권 이양은 다시 한번 새로운 기로에 서게 됐다. 조 회장의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7월 부친에 대한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조현식 부회장도 뒤이어 심판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조희경 이사장의 결정에 힘을 보탰다.
성년후견은 질병이나 노령 등에 의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경우 법원 결정으로 선임된 후견인에게 보호를 받는 제도다. 조 이사장 측은 부친인 조양래 회장이 차남에게 지주회사 주식을 승계한 과정이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인지 객관적인 판단을 받고 싶다는 것을 청구 취지로 밝혔다.
최근 서울가정법원은 조희경 이사장 측의 청구를 받아들여 조 회장의 정신을 감정할 기관으로 신촌세브란스병원을 지정했지만 세브란스병원이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신속한 감정이 어렵다는 의견으로 촉탁서를 반송해 사실상 조 회장의 정신감정을 거절했다. 업계에서는 늦어도 올해 안에는 1차 결과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지만 정신감정 병원을 다시 찾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1년 넘게 이어온 한정후견심판이 다시 공전상태에 놓였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에서 성년후견 신청을 용인하고 조 이사장이 후견인이 된다면 후견인 입장에서 조양래 회장의 주식 매각행위에 대한 무효 소송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조 회장이 지분을 넘길 당시에도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성년 후견인은 법원의 판결이 있는 때부터 비정상적 의사결정에 대한 취소가 가능하다. 성년 후견을 신청한 시점 이전에 이뤄진 지분매각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장녀인 조 이사장이 후견인이 되고 조 회장이 지분을 넘길 당시에도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지에 따라 판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식 부회장이 경영권 탈환을 위해 조현범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과 연합군을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조 회장은 슬하에 2남2녀를 뒀는데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이 19.32%, 차녀인 조희원 씨가 10.82%, 장녀인 조희경 이사장이 0.83%의 지주회사 지분을 각각 가지고 있다. 조현범 사장을 뺀 삼남매의 지주회사 지분을 합하면 30.97%다.
일각에서는 오너가(家) 외에 한국앤컴퍼니 최대지분을 가진 국민연금도 경영권 분쟁이 생길 경우 최근 횡령 혐의로 흠결이 생긴 조현범 사장보다 조현식 부회장을 밀어줄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를 보면 경영권 분쟁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특별한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지만 각종 송사 관련 인사에는 반대 의사를 피력해왔다. 조현식 부회장이 국민연금 지분(5%)까지 우군으로 확보하게 된다면 35.97%까지 지주회사 지분율이 올라가게 된다. 차남인 조현범 사장이 42.9%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7% 이내까지 격차를 좁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쉽진 않겠지만 조 회장의 지분 정리가 가족들과 협의되지 않았다면 조현범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의 연합전선이 구축될 수도 있다"면서 "이 경우 오너가를 제외하고 가장 큰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과 나머지 일반주주들이 어느 쪽 편을 들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조현식 부회장이 지주회사인 한국앤컴퍼니 사내이사직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조 부회장의 한국앤컴퍼니 사내이사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조현식 부회장은 지난 3월 열린 정기주총 이후 한국앤컴퍼니 이사회 의장직과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부회장직과 사내이사직은 유지하고 있고, 지주사 보유지분(19.32%)에 대한 매각도 없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조 부회장이 내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를 연임할 수 있다면 동생인 조현범 사장에 대한 적극적인 견제와 감시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앞서 언급한 카드들이 모두 여의치 않을 경우 조현식 부회장이 따로 독립회사를 차려 나가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한국타이어그룹은 주력사업인 타이어사업 외에는 비중이 극히 미미해 사실상 계열분리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조현식 부회장이 그룹내 입지를 잃는다면 최종 선택지는 그룹에서의 독립이 될 수 있다. 조 부회장은 이미 올해 개인자금을 투입해 신기술사업 관련 회사 2곳(엠더블유홀딩, 엠더블유앤컴퍼니)을 설립했다. 두 회사 모두 조 부회장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향후 조 부회장이 이 회사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영역을 구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타이어그룹은 타이어사업 외에 비주력 비중이 크지 않아 계열분리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조현식 부회장이 경영권 탈환에 실패할 경우 향후 그룹에서 따로 독립하는 방법을 타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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