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에서]
'궁여지책' 브랜드 리뉴얼
건설사, 품질 높이기와 비용 절감보단 간판 바꾸기 열중
이 기사는 2024년 05월 20일 08시 21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서울 반포 한강 인근에 위치한 하이엔드급 아파트 전경 (사진=박성준 기자)


[딜사이트 박성준 기자] 최근 건설업계에서는 주택 브랜드의 리뉴얼이 한창이다. 주로 중견건설사에서 이런 행보가 많이 보이지만 대형건설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주력 상품인 주택 브랜드뿐만 아니라 사명의 변경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브랜드가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 브랜드는 상상 이상으로 기업의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이름값을 따지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부동산 시장에서 이런 분위기는 더욱 팽배하다. 대형 건설사들이 끝없이 하이엔드 브랜드를 내놓자 이제는 그보다 한 수 위인 하이퍼엔드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이런 경쟁구도가 과열되다 보니 이제는 정체불명의 외국어로 이뤄져 한 번에 발음하기도 어려운 브랜드도 많다. 대체로 좋은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들의 이니셜을 따 주렁주렁 연결한 결과다. 지나치게 이름이 길어진 아파트 단지는 일부 커뮤니티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큰 실속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최근 건설업계는 이 같은 브랜드 리뉴얼을 적극적으로 시도 중이다. 단순히 이미지 제고를 하기 위해서는 아닌 듯하다.


우선 몇 년 사이 매우 어려워진 영업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기업의 가치를 높이거나 이익률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브랜드 리뉴얼 정도가 전부다.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바꿔다는 것은 그나마 원가율 상승에 영향이 적은 편이다.


물론 새로운 브랜드를 고안하고 정착시키는데도 컨설팅과 공모 등 최소한의 비용은 들어간다. 또한 시간적 비용같은 무형의 자원까지 생각해보면 오히려 상당한 리스크를 감내해야되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건설업체들이 브랜드 리뉴얼을 선택하는 것은 별다른 돌파구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건설업계는 역마진에 가까운 높은 원가율에 고금리로 인한 자금조달의 역경까지 더해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마땅한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이익을 보려면 공급하는 건축물의 가치를 높이거나 아니면 원가의 통제를 통해 투입하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


전자를 생각한다면 연구개발을 통해 건축물의 품질 자체를 획기적으로 높여야하고, 후자를 택한다면 인건비부터 자재까지 가능한 뭐라도 저렴하게 구해야 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현실적인 벽이 높은 상황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이 때문에 건설사 입장에선 분양가라도 높이려면 브랜드 가치를 명분으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브랜드 리뉴얼의 배경은 최근 이어지는 부실시공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의도도 읽힌다. 최근 하자보수에 관한 민원이 많아진 배경도 영업환경의 악화와 무관치 않다. 원가율이 높아진 상황에서 사업수지를 무리하게 맞추려다보니 시공에 대한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간판만 바꿔 단다고 대중들의 기억이 사라지진 않는다. 이는 오랜기간 정치권에서도 증명된 결과다. 오히려 대중을 기만한다고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여하튼 이러한 브랜드 리뉴얼 열풍도 결국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논리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판매자가 아무리 좋다고 주장해봐야 시장에서 희소성을 잃는다면 가치는 인정받지 못한다. 건설사는 이에 맞춰 또다시 더 나은 가치를 제안해야 한다. 하이엔드에서 하이퍼엔드에 이어 이제는 곧 초하이퍼울트라엔드 시대도 열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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