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곤 에스엘 회장 '노장투혼'…3세 독자경영 멀었다
올해 만80세, '명예회장'직 신설 1년만에 '총괄회장' 명칭 변경…'관세 이슈' 대응
이 기사는 2025년 04월 03일 07시 0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에스엘 홈페이지)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이충곤 에스엘 회장이 노장투혼을 불사하면서, 이 회장 장남인 이성엽 부회장의 독자경영 시점이 지연되고 있다. 여든을 넘긴 이 회장이 용퇴 시점을 미루는 주된 이유로는 경영 불확실성이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중심의 무역 정책을 전개하면서 완성차 업계는 물론 부품사까지 연쇄적인 폭탄 관세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동차 램프와 섀시 부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에스엘도 관세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이 회장 리더십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 이충곤 회장, 용퇴 돌연 연기?…명예회장 대신 총괄회장직 신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에스엘은 지난달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임원 직급 관련 정관을 변경했다. 기존에는 '임원이라함은 당사 조직상의 명예회장, 회장, 부회장, 사장, 경영리더를 말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이번 주총을 거쳐 명예회장이 '총괄회장'으로 수정됐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에스엘이 지난해 3월 정기 주총에서 해당 정관을 이미 수정한 전례가 있다는 점이다. 당시 회사는 회장보다 한 단계 높은 직급으로 명예회장을 신설했으며, 부사장 이하 직급을 경영리더로 일괄 통일했다.


이를 두고 업계는 에스엘이 완전한 3세 경영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다고 판단했다. 통상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만큼 상징성만 가지고 있는 데다, 이 회장이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에서 내려오는 등 경영 개입 정도를 서서히 줄여왔기 때문이다. 1944년생으로 올해 80세가 된 이 회장은 고(故) 이해준 창업주 아들이다. 1983년 에스엘 전신인 삼립산업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된 이후 38년 만인 2021년 3월 자발적으로 미등기 회장이 됐다.


이충곤 에스엘 회장 프로필. (그래픽=이동훈 기자)

사실 이 회장은 어느 시점에 은퇴를 하더라도 문제될 게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다. 예컨대 이 회장은 이미 2007년 장남에게 최대주주 지위를 물려줬다. 2006년 말 기준 에스엘 최대주주는 지분 25.3%를 보유한 이 회장이었다. 하지만 에스엘은 2007년 10월 이 부회장 개인회사 격이던 에스엘테크와 합병했고, 이 부회장이 단숨에 에스엘 최대주주를 차지했다. 에스엘테크가 내부거래로 빠르게 몸집을 키운 결과, 에스엘테크 주식 1주당 에스엘 주식 41.8주가 지급된 덕분이다.


이 부회장 경영권은 매우 안정적인 수준으로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자 지분율이 30% 이상일 때 지배력이 공고하다고 분류한다. 현재 이 부회장 홀로 26.5%의 지분율을 구축 중이며, 이 부회장 자녀인 이주환·동환 군의 지분율 총 6%를 더하면 30%가 훌쩍 넘는다.


오너 3세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 부회장에게는 각각 1명의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는데, 이들이 에스엘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어서다. 이 회장 차남인 이승훈 전 에스엘미러텍 사장의 경우 한때 지분율이 17.1%에 달했지만, 꾸준히 주식을 장내매도하며 최근 10%까지 낮췄다. 이 회장 장녀인 이지원 씨는 0.32%의 지분만 들고 있다.


◆ 美 관세 리스크 대응 위해 이 회장 리더십 지속 관측


하지만 이 회장은 명예회장 대신 총괄회장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명예회장에 오를 경우 경영 보폭이 제한된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총괄회장은 경영 전반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여전히 실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에스엘이 1년 만에 정관을 재차 수정한 배경에는 대외 리스크 고조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관세 이슈가 현실화될 경우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중장기적으로 해외 투자를 확대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재무부담도 가중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미국은 다른 나라가 미국에 대해 부과하는 관세와 비관세 장벽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도 비슷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상호관세' 조치를 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3일 0시1분부터 자동차 관세 25%가 발효되며, 자동차 부품의 경우 내달 3일부터 적용된다. 당장 이날부터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에 한해 막대한 규모의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다. 이에 현대자동차 미국판매법인(HMA)은 현지 딜러들에게 차량 판매 가격이 인상될 수 있다는 점을 공지한 상태다.


에스엘 테네시. (출처=에스엘 홈페이지)

에스엘이 미국 테네시와 앨라배마 2곳에 현지 공장을 운영 중이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 내 생산공장이 없는 다른 부품사에 비해서는 현지 대응력을 갖출 수 있어서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최대 고객사인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총 120만대의 생산 체제를 구축하기로 결정한 만큼 추가 증설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조지아에 위치한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 규모를 종전 연산 30만대에서 50만대로 늘리기로 했다. 에스엘 해외 법인 2곳은 헤드램프 생산을 기준으로 공장 가동률이 평균 86%로 높은 편이다.


문제는 더 있다. HMGMA 가동이 안정화되기까지는 국내에서 생산한 차량을 수출할 수밖에 없는데,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품사 납품 단가를 낮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에스엘은 또 다른 주요 고객사로 GM과 포드를 두고 있는데, 현지에서 소화할 수 없는 물량에 대해서는 현지 증설이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57년간 에스엘에서 쌓아온 전문성과 경험치를 갖춘 이 회장 리더십이 더욱 중요한 시기라는 분석이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이 부회장은 관세 리스크가 소거될 때까지 독자 경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 에스엘 관계자는 "명예회장의 경우 역할과 범위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총괄회장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며, 직급만 새로 만들었을 뿐 이 회장은 아직 '회장'"이라며 "미국 내 공장을 가동 중이지만, 밸류체인이 다 갖춰지지 않은 만큼 관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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