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사태와 자본시장 논쟁"김병주 회장 사재출연, PE업계 생태계 망친다"

[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홈플러스 회생 지원을 위해 사재를 털어놓기로 한 가운데 이를 두고 PE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가 도의적 책임을 지는 그림이지만 이같은 사례가 자칫 PE업계 전반으로 번질까 염려하고 있다. 투자실패가 일어나면 사재를 내놓아야 한다는 '공식'이 자리 잡게 된다면 향후 국내 PE업계 생태계는 초토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MBK는 지난 16일 입장문을 통해 김 회장이 사재를 털어 홈플러스 회생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채권단 중에서도 소상공인 거래처가 신속하게 결제대금을 지급 받을 수 있도록 재정 지원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지원 규모, 시기, 방식 등을 밝히진 않았지만 최소 1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홈플러스 대주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이지만 발표 이후 PE업계에선 탄식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김 회장의 사재 출연 소식이 PE업계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힘줘 말했다.
PE들은 기관투자자(LP)들로부터 투자금을 출자받고 펀드 운용을 통해 수익을 내는 사업을 영위한다. 업무집행사원(GP)은 펀드 운용보수와 함께 일정 수준의 수익률을 초과하는 경우 성과보수를 지급 받는다. 모럴해저드를 방지하고 LP와 함께 책임을 지기 위해 펀드 총액 1~3% 수준의 운용사 출자금(GP 커밋)도 낸다.
통상 PEF의 GP로 선정된 하우스에서 투자 실패가 일어났을 경우 GP는 투자금을 손실 처리한다. 딜 성격에 따라 GP커밋을 우선 손실처리하는 경우(우선손실충당제)도 있지만 GP 하우스 대표를 비롯해 운용 책임자 등이 사재를 내놓는 경우는 없었다.
GP 입장에선 투자금을 손실 처리하는 것 자체가 뼈아프다. LP 대비 적은 금액이지만 자금 상황이 여유롭지 않아 큰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투자 실패가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LP들 사이에서 평판이 훼손돼 향후 펀딩에서 큰 차질을 빚는다.
PE업계가 우려하고 있는 건 김 회장의 사재 출연이 PE업계 전반으로 번질 수도 있어서다. PEF를 운용하다보면 투자 실패는 종종 일어나는데 그 때마다 책임자가 사재를 출연해야 한다면 PE업계의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앞선 국내 PEF 운용사 대표는 "투자에 실패했다고 GP에게 사재를 털어놓으라는 건 너무 지나친 요구"라며 "이런식의 사재 출연은 지금은 사라진 연대보증의 성격과 같다. 투자라는 행위에는 리스크가 동반될 수밖에 없는데 사재 출연 요구는 이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PEF 운용사 대표 역시 투자업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앞으로 LP로부터 출자 받을 때 사재 출연 각서를 써야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며 "시장 분위기가 이대로 흘러간다면 PE뿐 아니라 벤처캐피탈(VC), 액셀러레이터(AC) 등 투자업역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PE업계의 우려는 점차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 LP인 국민연금이 최근 주식‧채권 분야에만 적용해 온 '책임투자 가점제'를 PEF GP 선정에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지금까지는 PE 하우스의 트랙 레코드, 수익률 등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를 해왔지만 펀드 운용 과정에서 GP가 어떻게 활동했는지 등 질적 평가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등 경영권 분쟁 거래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한 대형 PEF 운용사 대표는 "투자실패 시 사재 출연 등 패널티 도입에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에 사모펀드가 도입된 지난 20년 동안 LP, GP 모두 매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겠지만 섣부르게 행동하면 PE 생태계가 단기간에 초토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