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홈플러스'어음 대신 현금달라'…불신 깊어진 제조업체 발빼기 시작

[딜사이트 노연경 기자] 홈플러스에 상품을 공급하던 제조업체들이 하나둘 납품 중단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선제적 조치'라곤 하지만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만큼 대금을 못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상적으로 납품을 진행하고 있는 곳들도 물밑에서는 어음 대신 현금 정산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가 제조업체를 안심시키지 못하면 납품 중단 기업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6일 오후까지 홈플러스에 납품을 중단한 주요 제조업체는 동서식품,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주류 제외), 삼양식품, 오뚜기 5곳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처음처럼, 클라우드 등 주류는 기존대로 납품하는 대신 음료는 납품을 중단하기로 했다. 삼양은 홈플러스에게 납품 대금 지급 계획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 일시적으로 납품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4일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 개시를 신청했다. 지난달 말 신용등급이 낮아지면서 단기차입금 상환 부담이 높아져 현재 부도 상태는 아니지만, 대금 지급 등이 밀릴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러면서 홈플러스는 상거래 납품대금은 정상적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법원으로부터 사업계속을 위한 포괄허가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영업은 정상적으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조업체들이 납품을 중단하면서 정상적인 영업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실제로 이날 서울 시내에 위치한 홈플러스익스프레스를 방문해본 결과 일부 매대가 텅텅 비어 있는 등 상품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홈플러스 측은 대규모 할인 행사인 '홈플런'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신선식품 일부가 동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 매장에선 신선식품뿐 아니라 기성 음료, 과자, 주류 등도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홈플러스가 정상 영업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음에도 제조업체들이 빠르게 발을 뺀 이유는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로 인한 학습효과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규모 미정산으로 인해 불거진 티메프 사태는 여전히 수습이 되지 않고 있다. PG사나 여행사로부터 일부 환불을 받은 일반 소비자들과 달리 상품을 공급했던 판매자들은 여전히 정산대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홈플러스에 납품업체들도 홈플러스가 당장 금융이자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재무 상황이 악화된 상태라는 것을 알고 빠르게 납품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대형마트 납품대급은 일반적으로 한 달 주기로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에 따라 따르지만 대부분 즉시 현금을 받는 형태가 아니라 어음을 받고 물건을 납품한 뒤 정산을 받는다. 대형마트 업계 2위인 홈플러스 규모를 감안하면 한 달만 납품대금을 못 받아도 대형 제조업체가 입는 손해는 막대하다. 작년 말 기준 홈플러스는 127개의 매장을, 슈퍼마켓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는 308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홈플러스 납품 중단과 함께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납품도 함께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납품 중단 기업은 향후 더 늘어날 수 있다.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제조업체들은 물밑에서 홈플러스에 현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어음을 받는 대신 현금으로 즉시 결제를 해준다면 납품한다는 것이다. 삼양식품이 구체적인 납품 대금 지급 계획을 요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재 대상과 남양유업, SPC삼립 등 다른 제조업체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납품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한 시장 관계자는 "많은 업체들이 홈플러스에 어음 대신 현금 지급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계약 조건이 지켜지지 못하면 홈플러스에 납품을 중단하는 기업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홈플러스는 이날 기업 회생 절차 개시로 인해 일시 중지됐던 일반 상거래 채권에 대한 지급을 재개했다며 납품업체 안심시키기에 나섰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납품업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게 대급 지급 능력인데, 이날부터 상거래 채권에 대한 지급을 재개한 만큼 이같은 우려는 일부 해소됐다"며 "내부적으로 바이어들도 개별적으로 납품업체와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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