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현기 기자] 전자투표제가 주주총회에서 판도를 바꿀까. 총수일가의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가 주요 대기업 집단의 내달 정기 주주총회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전자투표가 안건의 가부를 가를지 관심을 끌고 있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현대차 사내이사 연임을 포함, 재선임을 앞둔 대기업 총수 일가 23명이 주주들의 심판대에 오른다. 이들 총수 일가가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선 주주총회에서 기관투자가뿐만 아니라 개인투자자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

지난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가 도입된 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이번 주총부터 사내이사 재선임과 관련한 진통이 상당할 것이란 예고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전자투표제다. 전자투표제의 도입은 새로울 일이 아니다. 다만 소액주주들에게 부담으로 여겨졌던 시스템 장벽이 개선되고 있는데다 리딩기업 삼성전자가 전자투표제를 올해부터 실시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의결권 등을 행사하는 온라인 투표방식이다. 주주가 주총장에 출석하지 않고도 인터넷에 접속, 특정 안건에 찬성 혹은 반대를 표시함으로써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5월부터 시행됐지만 도입 초반 3년간 전자투표제를 채택한 상장사는 하나도 없었다.

도입 10년을 맞은 올해가 전자투표제 큰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기존 전자투표의 경우, 주주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주민등록번호 기준의 ‘공인전자서명’ 하나뿐이었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선 공인인증기관 외에 '본인확인기관(이동통신 3사)'으로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일반주주가 모바일을 통해 전자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이전보다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마침 대기업 집단 혹은 지주회사들이 전자투표제를 채택하고 나섰거나 채택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우선 지난 2018년 주식을 50:1로 액면분할, 주주의 수를 대폭 늘린 삼성전자가 내달 주총에서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의 소액주주는 지난해 9월 기준 60만6447명으로 전체 주식의 60.99%에 달한다. 이들이 스마트폰 본인 확인을 거쳐 모바일로 전자 투표를 실시할 경우, 기업 경영에 큰 변수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최근 '남매의 난'으로 국민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내달 주주총회 전자투표제 채택도 빼놓을 수 없다. 지주회사 한진칼의 경우, 조원태 현 회장 측의 지분이 33.45%, 조현아 전 부사장 측 지분이 32.06%로 양측의 힘 겨루기가 박빙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4.11%를 비롯해 34.49%의 소액주주들이 전자투표제를 통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의견을 낼 경우, 승자를 뒤바꿀 수 있다.

한진칼은 지난 7일 이사회에서 전자투표제를 검토하지 않았으나 조 전 부사장과 KCGI, 반도건설 연합군이 오는 14일 주주제안을 통해 전자투표제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만큼은 한진칼 이사회가 이를 뿌리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10일 "일반주주가 모바일을 통한 전자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이전보다 개선됨에 따라, 2020년 상장기업의 주총에서 일반주주의 전자투표 활성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며 "전자투표 기간 중 주주에게 전자투표 관련 정보를 통지하도록 신설하는 등 전자투표 편의성이 제고된 점도 참고할 만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