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안경주 성장기업부 부국장] 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활기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과 기업가치 제고 정책에 대한 기대가 맞물리면서 투자심리도 눈에 띄게 개선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같은 주식시장의 활기는 지수 상승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투자자가 안심하고 자금을 맡길 수 있다는 신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상장폐지 제도는 자본시장의 신뢰를 떠받치는 핵심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부실기업을 적시에 퇴출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인 셈이다.
정부가 상장폐지 제도를 손질하고 시가총액 기준을 강화하며, 이른바 '동전주 퇴출' 기준까지 마련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상장 유지 기준은 엄격해야 한다. 시장에서 퇴출당해야 할 기업까지 억지로 살려서는 안 된다.
다만 엄격함이 획일성을 의미해서는 곤란하다. 상장폐지 심사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기업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래소는 개선기간과 이의신청, 시장위원회 심의 절차를 운영한다. 이는 문제가 발생한 기업이라도 스스로 개선할 기회를 주고 그 결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심사 역시 '과거의 문제'와 함께 '현재의 변화'도 들여다봐야 한다.
최근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심사를 받은 한 코스닥 상장사의 사례는 이러한 고민을 보여준다. 이 회사는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 상장사에 감사의견 거절은 사실상 치명적인 판정이다. 투자자가 기업의 재무정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는 주저앉지 않았다. 다음 사업연도 감사에서 적정 의견을 받아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했다. 최대주주도 교체했다. 기존 최대주주는 경영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투자자에게 회사를 넘겼고, 회사는 운영자금 확보를 위한 신주 발행에도 나섰다.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과 자금 조달이 동시에 추진된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최대주주 변경 조건이다. 기존 최대주주 지분은 주당 1원에 양도됐다. 거래정지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쉽게 보기 어려운 거래 조건이다. 통상 최대주주 지분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지만, 이번 거래서는 프리미엄은 물론 지분 가치까지 사실상 포기했다. 회사의 정상화를 우선한 결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만으로 기업의 미래가 보정된다고 할 수 없다. 새로운 최대주주가 회사를 성공적으로 정상화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시장이 봐야 하는 것은 약속이 아니라 결과다. 감사의견을 회복했고, 최대주주를 교체했으며, 회사는 신규 자금을 조달했다. 기존 최대주주 역시 경제적 이익을 내려놓으며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적어도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하기 위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같은 노력에도 기업심사위원회는 상장폐지를 의결했고 현재 시장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회사의 정상화 가능성보다는 새 최대주주 측의 과거 이력에 대한 우려가 심사 과정에서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번 사례는 상장 유지 심사가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상장 유지 심사는 과거의 잘못을 심판하는 절차여야 할까. 아니면 앞으로 정상적인 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여야 할까.
모든 기업을 구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감사의견 '적정'을 받지 못한 기업,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낮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의지가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투자자를 보호하는 길이다.
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배구조를 바꾸고 자금을 조달하며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한 기업까지 과거의 잣대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장 유지 여부는 과거의 실패뿐 아니라 그 이후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도 함께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시장 선진화의 목표는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데 있다. 신뢰는 상장폐지 결정을 많이 내린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으로 부실기업을 퇴출하고, 정상화를 위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낸 기업은 그 변화 역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장은 신뢰를 얻게 된다.
상장폐지는 시장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엄격한 퇴출은 필요하지만, 개선 결과까지 외면하는 심사는 시장의 신뢰를 높이기 어려워 보인다. 자본시장이 평가해야 하는 것은 기업의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다. 상장폐지 제도 역시 퇴출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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