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호정 부국장] # 어린 양(羊)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르신 먹는 물을 흐리냐"며 호통을 쳤다. 어린 양은 눈을 껌뻑이며 "어르신보다 아래에 있는데 어찌 물을 흐린단 말입니까"라고 대답했다. 할 말이 없어진 늑대는 어린 양을 지긋이 바라보다 "지금 보니 작년에 욕하고 도망간 녀석이 바로 너였구나"라며 다시 호통을 쳤다. 그러자 어린 양은 "저는 작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라고 말했다. 또다시 할 말이 없어진 늑대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그렇다면 날 욕한 놈이 네 형이겠구나. 네놈의 형이 욕 한 대가니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말한 뒤 어린 양을 잡아먹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동화작가였던 장 드라 퐁텐이 쓴 라퐁텐 우화집에 실려 있는 '늑대와 어린 양' 이야기다. 주로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권력을 남용하는 이들을 꼬집을 때 인용된다.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국감)를 보면서 떠오른 우화다. 올해도 여지없이 시답잖은 질의와 자기 말만 하는 국회의원과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방어기재를 발휘하는 기업인들의 모양새가 늑대와 어린양을 빼다 박았다.
사실 국회의원들이 국감을 빌미로 기업인을 증인 혹은 참고인으로 불러 면박과 호통, 그리고 망신을 주는 기강잡기는 오랜 전부터 많은 지적과 비판을 받아온 사안이다. 오죽하면 2013년 국감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던 정몽준 현 아산재단 이사장이 "경제계의 갑을 관계를 따지면서 정작 정치권이 최악의 갑질을 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을까.
국감은 국민의 선택으로 입법의 권한을 부여받은 국회의원들이 행정부의 정책을 점검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자리다. 아울러 사회 발전을 위한 입법의 단초가 될 자양분을 만드는 장이다. 기업인을 증인 혹은 참고인으로 부르되 이들을 정책 검증 수단이나 입법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하다못해 경제 현안에 대한 정확한 질의만 해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올해도 이러한 국감 풍광은 물 건너갔다. 3분의 1 밖에 진행되지 않은 시점인데도 이미 많은 기업인들이 희생양이 됐다. 더욱이 올해는 내년 4월에 있을 총선 때문인지 여야 할 것 없이 기업인 소환을 국정 감시 수단보다는 무기로 활용하고 있단 생각마저 든다.
실제 21대 국회가 증인 혹은 참고인으로 채택된 기업인 수만 봐도 2020년에는 63명에 불과했으나 2021년 92명, 2022년 144명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160명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떤 형태로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국감 스타'가 돼야 총선 자리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지기에 그런 것 아닐까 싶다.
기자가 된 이후 봐왔던 국감이 여야 정쟁과 호통으로 매년 얼룩졌기에 현실성 없지만 국감을 연말에 몰아서 하는 게 아닌 연중 상시화 하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적어도 '건 바이 건'으로 국감을 실시하면 행정부의 정책을 면밀히 살필 시간적 여유가 있는 데다 사안에 따라선 대안이나 개선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국회의원들의 스노비즘적 쇼(show)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줄어들 가능성이 큰 만큼 기업인의 줄소환 역시 감소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국회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는 겸허함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던 정몽준 이사장의 지적을 의원들이 다시금 생각해 볼 때다. 호통보단 논리적 지적과 합리적 논쟁으로 기업인에게 쓴소리를 하는 의원에게 열광하는 시대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